Why Did the US Fail to Predict ‘Candidate Tr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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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미국은 왜 ‘트럼프 후보’ 예측 못했을까

4·13총선일 아침 회의를 마치면서 새누리당 의석 맞히기 내기를 했다. 175석, 170석, 160석… 145석, 140석. 오랜 정치부 기자 경험이 있는 사람은 170석 이상을 예상했고 예민한 정치 감각을 자랑하는 사람은 160석을 자신했다. 남의 말을 곧잘 믿는 나는 선거 사흘 전 새누리당의 자체 판세 분석대로 145석을 불렀다.

다음 날 아침, 가장 근사치인 140석에 걸었다며 판돈을 걷어간 사람은 정치부 근처에도 안 가본 문화부장 출신 논설위원이었다.

우리만 틀렸던 게 아니다. 청와대 정무라인은 143∼145석으로 예상했다 121석, 그것도 더불어민주당에 1석이 적은 참패를 당하자 총선 다음 날 사의를 표했다고 한다(물론 아무도 문책받지 않았다). 이 정도 선거 예측 실패면 업계에선 대형 참사다. 여론조사기관에선 요즘 잘 쓰지도 않는 유선전화를 돌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집단사고(思考)에 있다. 정치부 경험이 많을수록 ‘같은 물’에서 노는 사람들과 정보를 교환해 민심 밑바닥에선 마그마가 끓어오르는 걸 몰랐던 거다.

미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작년 6월 막말대장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장난이냐는 반응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예측한 ‘대선 족집게’ 네이트 실버도 오래 못 간다고 예견했다.

트럼프가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 높다란 펜스를 쳐야 한다는 둥 말도 안 되는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주류 보수 세력은 공화당 망신을 시킨다며 치를 떨었다. 그가 승승장구, 지난달 26일 동북부 5개 주 경선에서 완승하면서 “사실상 내가 후보”라고 선언하자 미국의 엘리트 계층은 거의 경악하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도 놀랐다고 고백했다. 사회적 지위와 환경이 비슷한 부르주아 전문직 사람들끼리 어울리느라 트럼프를 찍은 75%의 유권자들이 “사는 게 갈수록 팍팍해졌다”고 말하는 것을, 2030세대에겐 사회적 신뢰가 역대급으로 내려앉은 것을, 그래서 이들의 고통과 분노를 파고든 트럼프가 폭풍 질주하는 것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금수저 계급, 기득권 엘리트, 자본과 세계화에 대한 분노가 선거 예측을 뒤엎는 것이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TKK(대구경북 강남) 패권주의를 휘둘렀던 새누리당이 한 방에 훅 가고, 그 덕에 별로 잘한 것도 없는 두 야당이 벌떡 일어선 것도 오만한 기득권에 대한 징벌이라는 세계적 흐름이다.

작년 영국에선 노동당 국회의원들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66세의 전투적 사회주의자 제러미 코빈이 ‘토론 활성화를 위해’ 당수 선거에 나섰다가 덜컥 당선되는 일도 벌어졌다. “극좌로 가면 당이 망한다”며 코빈 반대운동을 했던 ‘강남 좌파’ 토니 블레어 전 총리에게 일격을 날린 꼴이다.

신물 나는 반(反)정치시대, 거친 막말에서 반(反)영웅의 진정성이 뚝뚝 떨어져 저소득, 저숙련, 저학력 남성들이 특히 열광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트럼프는 경선 출구조사 결과 10만 달러 이상을 버는 중상류층의 34%, 대졸과 대학원 이상 졸업자의 43%의 지지를 받았다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전했다.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가 다른 이유는 대면(對面)조사 때문이다. 남들이 욕하는 트럼프를 찍겠다고 대놓고 말하진 못하지만 투표장에선 마음 놓고 찍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진짜 탄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헤어스타일도 기괴한 트럼프가 “한국이 방위비를 더 내지 않으면 미군 철수를 할 수도 있다. 핵무장을 하든지 말든지…”라고 하는 말을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뉴욕포스트 같은 대중지는 옳은 소리라고 격찬을 했다. 민주당 대선주자 힐러리 클린턴은 자신의 강점이 외교이고 외국 지도자들의 지지가 쏟아진다고 했지만 미국 대통령을 외국인이 뽑진 않는다. 더구나 클린턴은 진정성 없는 엘리트의 화신처럼 여겨지는 판이어서 또 예측을 뒤엎는 대선 결과가 나올지 모를 일이다.

설령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진 않는다고 해도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붕붕 띄운 어젠다는 결국 정책으로 채택되기 마련이다. 시대정신 또는 유권자의 감춰진 욕망을 건드렸기 때문이고, 포퓰리즘이 위험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보수의 타락이 내 나라를 뒤흔들 수도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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