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신석호]외교부 北美 1과는 美日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던 4월 26일∼5월 2일 6박 7일은 한국 워싱턴 특파원들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밤낮이 뒤바뀐 상황에서 새벽에 일어나 초판 신문을 막고 잠깐 눈을 붙인 뒤 아침에 바로 일어나 아베 총리의 오전 일정을 커버해 마지막 판을 막아야 하는 강행군이 연일 이어졌다.
아베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만행을 시인하고 사과할 것인지는 이미 한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상태였다. 그의 일거수일투족, 말 한마디와 맥락이 모두 엄청나게 중요한 취재 대상이었다. 2013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이 워싱턴을 찾았을 때보다 바빴던 것이 확실했다. 한국 언론은 일본 언론 다음으로 관련 기사를 많이 썼을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아베 총리는 미 연방 상하 양원 합동연설에서 아시아 청중을 외면했다. 대신 “우리(일본)의 행동(침략과 식민지 지배)은 아시아 국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줬다”라는 말로 대신해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의 공분을 샀다. 하지만 그의 예상된 ‘오리발’은 미국 내 지성들의 반발을 샀다.
지난달 28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AFP통신의 앤드루 비티 백악관 출입 기자가 첫 질문자로 지명돼 아베 총리에게 ‘지금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고 돌직구 같은 질문을 날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평소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을 편드는 일에 신중했던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전 세계 일본학자 187명이 아베 교수를 비판하는 성명을 낸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리 측의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여론을 의식한 청와대와 외교부가 조바심을 내면서 ‘워싱턴 한국 외교 인력의 75%가 아베 뒷다리 잡기에 동원됐다’는 소문이 워싱턴에 퍼졌다. 주미 한국대사관에 업무 지시를 내리는 북미(北美)국 산하 북미1과는 최근에는 ‘미일(美日)과’로 불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북한 문제 공조 등 더 중요하고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문제에 투자되어야 할 한국의 대미(對美) 외교 역량이 ‘워싱턴을 통해 대일 과거사 문제를 해결한다’는 과거 지향적 명분 외교에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아베의 태도를 바꿔 달라’는 부탁을 오랫동안 받아야 하는 미 당국자들의 피로감도 누적되고 있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소장은 “미국이 한국과 일본 관계를 중재(mediate)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미국은 한국의 우려와 일본의 견해를 듣고 대화를 증진시키는 알선(good offices)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비용과 위험을 안고 동맹국 미국의 짐을 덜어주겠다’는 아베 총리의 미래지향적이고 실리적인 대미 외교는 한국에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됐다.
일본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괌 기지 개보수에 25억 달러(약 2조7000억 원)를 선뜻 내놓겠다고 선언했지만 한국은 북한의 위협을 막기 위해 공짜로 배치하겠다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도 중국의 눈치를 보며 꺼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 대신 추진하겠다는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 구축 사업에 배정해야 할 예산을 복지 사업에 돌리고 있는 상황은 미국에 안보를 무임승차하겠다는 의도로 비칠 우려가 크다. 글로벌 현안에 대한 기여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시리아 난민 지원에 5억9000만 달러를 내놓은 상황에 한국은 고작 1000만 달러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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