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 다른 한·미 FTA
누가 봐도 미국이 유럽연합(EU)보다 한국과 협상을 잘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3년 전에 체결된 미국과 한국 간 자유무역협정(FTA)과 다음 달께 최종 서명될 EU와 한국의 FTA를 비교해서 하는 말이다. 자동차 부문의 협상 결과물이 특히 그렇다.
EU는 한국과 3~5년에 걸쳐 수입 자동차의 엔진 용량별로 상호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한 · 미 FTA에서는 한국이 미국차에 부과하는 8%의 수입관세를 즉각 철폐한다는 조항을 담았다. 미국은 한국산 소형차에 붙는 관세 2.5%를 즉시,3000㏄ 이상 대형차에 매기는 관세 2.5%는 3년 기간을 두고 면제키로 했다.
미국은 한국과의 협상에서 EU가 얻어내지 못한 ‘주요 조항’까지 챙겼다. 한국 측이 협정의 혜택에 반하는 조치를 취하면 한국산 자동차에 다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정교한 이행의무 장치(snap back)가 그렇다. 한국은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차별적인 세금체계도 없애기로 약속했다. EU와는 이런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
트럭 부문에서도 미국은 자국 시장을 개방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방어할수 있도록 짰다. 한 · 미 FTA는 한국이 10%의 트럭 관세를 곧바로 철회토록 한 반면 미국은 한국산 수입 트럭에 대해 10년에 걸쳐 25%의 관세를 단계적으로 풀기로 했다. EU · 한 FTA는 한국이 트럭 관세를 즉각 없애도록 했지만 EU는 22% 관세를 트럭 유형에 따라 3~5년에 걸쳐 없앤다고 돼 있다.
또 미국은 자동차업체가 자국의 안전표준에 맞게 생산한 차량을 연간 최대 6500대까지 한국에서 팔 수 있는 면제조항을 확보했다. EU · 한 FTA에는 관련 조항이 포함돼 있지 않다. 투자자 분쟁 해결 조항의 경우 한 · 미 FTA에는 있지만 EU · 한 FTA는 EU 회원국이 능력껏 처리토록 했다. 노동과 환경분야의 조항도 미국은 구속력 있는 분쟁해결 장치에 따르게 했지만 EU는 그렇지 않다.
EU 보다 한국을 상대로 협상을 잘했다는 지적은 다름아닌 미국 측 분석이다. 한 · 미 FTA 협상 실무를 담당한 미 무역대표부(USTR)가 EU의 한국시장 선점을 우려했는지 지난해 10월19일부터 홍보하고 있는 내용이다. 태미 오버비 미국상공회의소 아시아총괄 부회장은 한 · 미 FTA가 모든 FTA의 황금기준이라고 평가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USTR의 홈페이지 자료는 어느 구석에서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내세우는 한 · 미 자동차 무역의 불공정과 불균형을 지적하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오바마와 민주당은 한국이 한 해 70만대의 차를 미국에 수출하나 미국산 차는 고작 7000대 수입한다면서 한 · 미 FTA 비준을 미루고 있다. 한 · 미 FTA의 실속을 과시하는 USTR 분석에 갖다대면 억지에 가깝다.
오는 6월30일이면 한 · 미 FTA가 체결된 지 3년째를 맞는다. 한국 국회는 여 · 야 의원 151명이 서명한 한 · 미 FTA 비준 촉구 서한을 최근 미 상 · 하원의원 전원에게 전달했다. 한국 국회는 비준 처리에 문제가 없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다만 2007년 한 · 미 FTA 협상을 주도한 우리 주요 부처의 장관 출신 야당 의원들은 끝내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게 옥의 티다. 이들의 표리부동이 오바마와 민주당에 알려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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