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and Obama’s Economic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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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선거 참패의 쓰라림을 뒤로 하고 태평양을 건너온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어두운 얼굴로 서울을 떠났다. 경제회복 실패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 아시아 순방의 최대 목적은 흔들리는 경제를 정상궤도로 돌려놓는 외교를 펼치는 것이었다. 경상수지 적자를 교정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한편으로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수출활로를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공정 무역으로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국가를 벌주어야 했다.

‘중국 견제’ G20회의 고난의 행군

이와 함께 오바마는 하루가 다르게 주장적이며 공격적인 중국의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해 인도·인도네시아·한국·일본을 순방하면서 대중 관여와 견제의 복합전략을 가동하고자 했다. 이번 순방에서 오바마가 그린 지도는 G20 회원국이면서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우방의 네트워크였다.

그러나 기대했던 한·미 FTA 협상은 매듭짓지 못했고, G20 회의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G20 서울 회의는 아마도 1945년 이래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참가국들의 집중포화를 받은 최초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환율을 조작하는 중국을 겨냥하면서 경상수지의 과도한 적자와 흑자에 대한 수치목표(GDP 대비 흑·적자 4%)를 설정하고 해소를 촉구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집단적인 반대에 부딪혔다. 6000억달러에 이르는 양적완화로 달러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하락시켰기 때문이다. 국제 공공재를 제공하는 패권국의 책무를 스스로 저버린 것이어서 그간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온 중국과 브라질은 물론 독일·프랑스·영국 등 서방 주요 국가들도 미국의 제안을 비판했다. 미국의 네트워크로서 인도·인도네시아·일본은 침묵으로 돕는 데 그쳤다. 외로운 미국은 각국 경상수지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가이드라인을 향후 구체화하기로 합의해 체면을 살렸지만, 중국에 힘이 실리는 현실을 쓸쓸히 지켜보아야만 했다.

한국은 어떤가. G20은 이제까지 한국이 낄 수 있었던 최상위 국제제도이다. 1999년 외환위기의 여파 속에서 장관급회의로 출범한 G20에 한국을 초대한 국가는 미국이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이를 정상회의로 격상시켜 한국을 최상위 포럼의 회원으로 만든 것도 미국이다. 그리고 서울 회의 개최 역시 미국의 지원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서울 회의에서 한국은 미국을 열심히 지지했다. 경상수지 흑자가 4%를 훌쩍 넘고 수출대기업을 지지하기 위해 외환시장 개입이 다반사인 한국이 미국의 수치목표 제안을 들고 중재를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일련탁생(一蓮托生).’ 극락정토에서 같은 연꽃 위에 다시 태어난다는 뜻으로, 사물의 선악에 관계없이 끝까지 행동과 운명을 같이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미국과 함께한 G20 서울 회의가 한국에 엄청난 유·무형의 자산을 가져다주었음은 분명하다. 개발에 관한 서울 컨센서스도 채택되었다. 문제는 언제까지 미국을 따라다닐 것인가이다. 이번 회의는 쇠퇴하는 패권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떠오르는 중국이 지식의 게임에서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향후 우리 민족의 운명이 미·중관계의 향배에 달려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다.

한국은 미·중 동시에 끌어안아야

대미외교를 중추로 ‘글로벌 코리아’를 외쳐온 한국 외교는 기로에 서 있다. 미·중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엮고 동시에 여타 주변국들도 끌어안는 네트워크적 발상이 요청된다. G20과 같은 다자외교의 장에서 지식을 바탕으로 국제규범을 창출해 중견국의 독자적 위상을 확보하는 소프트파워도 배양해야 한다. 이번 회의에서 추구한 중견국 가교론에 대한 현실적 전략 모색도 대단히 중요하다. 국내 다양한 행위자들의 지식을 엮는 열린 정책네트워크도 구축돼야 한다. G20과 오바마의 외로운 경제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던져주었다. G20 회의의 흥분에서 깨어나 본격적으로 복합 외교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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