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체면이 말이 아니다. 2022년 월드컵 유치 경쟁에서 인구가 160만명에 불과한, 중동의 작은 나라 카타르에 완패해 망신을 당했다. 또 폭로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5만여건에 달하는 외교 전문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브레들리 맨닝이라는 육군 일병이 정보를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아무리 테러 예방을 위한 정보 교환 차원에서 정보 접근 벽을 낮췄다지만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전후 초강대국 미국의 외교는 군사력과 함께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이었다. 테러전을 벌이기 위해선 해당국과의 공조가 필요하다. 양자 간 신뢰 수준이 대화의 질을 결정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폭로로 미국은 신뢰를 상당히 잃었다. 비밀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상대방과 어떻게 협상을 하겠는가. 각국 외교라인의 반발이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반면 위키리크스의 창업자인 줄리안 어샌지는 치밀한 계산을 통해 이번 일을 저질렀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정보 공개에 따른 역풍을 막기 위해 미국의 뉴욕타임스,영국의 가디언 등 세계 유력 언론사 5곳을 동시에 끌어들였다.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는 점을 한껏 부각시켰다. 이들 언론사는 자신들이 거부해도 어차피 외교 전문은 (다른 언론사에 의해) 공개될 것이란 점에서 어샌지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보도를 결정했다. 미 국무부의 해럴드 고 법률 고문이 위키리크스에 외교전문 공개가 법 위반이라며 이 내용의 공표를 즉각 중단하라는 편지를 보낸 때는 이미 각 언론사가 보도 방향을 정한 이후였다.
외교 분야의 권위 실추는 경제력 약화와 함께 쇠락하는 미국의 전조로 비쳐진다. 실업자가 1500만명에 달할 정도로 고용이 악화되면서 미국인들은 급속히 자신감을 잃어왔다. 그나마 소프트웨어와 정보기술 분야에서 자존심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정부의 기밀 정보 관리 능력에 허점이 드러나면서 도대체 어떻게 초강대국 면모를 유지할지에 대한 의혹이 커졌다.
위키리크스 사태로 인해 미국 외교력이 약화되면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9 · 11테러 이후 대테러 전쟁을 벌이기 위해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것과 같은 이치다.
문 제는 취약한 경제력 탓에 미국이 더이상 비용을 대기 어렵다는 데 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는 데 하루 2억달러씩 쓴다. 미국인들은 이 돈을 일자리 창출에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에서 예견했듯,미국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가 결국 경제력 낭비로 이어져 미국을 쇠락으로 이끌 수 있다는 지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브루스 애커먼 예일대 법대 교수도 ‘미국 공화국의 몰락’에서 “과도한 미국 정부의 팽창이 미국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꼬 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미국의 팽창을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몰락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군사력도 외교력도 결국 경제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요즘 중국의 행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재정적자를 줄이면서 고용을 확대하고 투자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하루 속히 찾아야 하는데도 미국 정치권은 부자들의 증세 여부를 놓고 끝없는 실랑이를 해왔다. 정치도 경제도 외교도 한껏 꼬여만 가는 게 요즘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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