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워싱턴 DC의 한반도 전문가들을 만날 때마다 뉴욕타임스를 조롱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달 중순 여론면에 실린 셀리그 해리슨의 기고문이 계기가 됐다.
한국의 좌파 진영에서 우상처럼 여기는 해리슨은 기고문에서 “분쟁이 일고 있는 한국 서해 남북한 경계선을 미국이 약간 남측으로 내려서 다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사령부가 만들어질 때 미국이 사실상 지휘 권한을 가진 것을 지적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남북한 간의) 경계선을 다시 그을 직권(職權)이 있다”는 말까지 했다.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라는 북한 주장과 비슷한 기상천외의 발상이다. 1970년대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던 존 쿠쉬먼 전 중장이 공동 기고자로 참여했다가 막판에 빠진 과정에 대한 ‘정정 보도’도 화제가 되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대북 특사로 활동했던 잭 프리처드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한반도와 관련한 역사와 정책 배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해리슨의 기고를 실은 뉴욕타임스를 “무책임하다”고 했다. 오늘 점심을 함께한 다른 전문가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뉴욕타임스의 편집자는 수준 이하”라고 지적했다.
해리슨이야 ‘북한’을 팔아 사는 사람이니까 그런다고 해도 오바마 대통령에게 남북한 경계선을 다시 그으라는 주장을 실은 뉴욕타임스 편집자는 무책임하다기보다는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일은 최근에도 있었다. 지난 8월에는 ‘햇볕론자’라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가 뉴욕타임스를 통해 한국 정부의 천안함 폭침(爆沈) 발표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을 백악관이 초청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내세웠다. 9월에는 방북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뉴욕타임스에서 천안함 폭침 문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대북(對北)정책 변화를 요구했다. 그래도 이들은 미국 대통령이 남북한 경계선을 다시 획정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만약 캐나다가 미국 영토에 대포를 쏴서 민간인을 사망케 하는 방법으로 이 지역의 분쟁화를 노리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 “미국이 땅덩어리도 넓은데 경계선을 약간만 남측으로 조정하면 될 것 아니냐” “과거 미국이 영국 식민지였으니 영국 총리가 새 경계선을 그어 주면 된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미국인 중 누구도 이를 정상적인 의견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다양한 견해를 반영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비정상 의견은 ‘다양’이라는 범주에 들 순 없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는 신문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권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반도의 현실을 오도(誤導)하는 글이 뉴욕타임스에 잇달아 실리도록 방치하는 정부와 현지 공관의 무능함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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