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 Credit Downgrade and American Suprem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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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국가신용등급을 산정한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고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끌어내리자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에 금융시장이 얼마간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옛 소련이 몰락한 뒤 지난 20여년간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누려왔던 패권적 지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부는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조종(弔鐘)이 울렸다거나 몰락의 전주곡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또 일부는 이번 신용등급 강등이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을 뿐이라며 파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점친다.

과연 어떻게 될까. 결론은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이번에도 큰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의 지적처럼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평가하기에는 신용이 낮은 회사라서가 아니다. S&P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 부도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는 회사다.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에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 지위를 잃은 이후, 즉 포스트 아메리카(post-America)의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지 W 부시는 민주당 소속인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8년의 재임기간에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하지 않고 ‘낭비하고 있다(squandering)’고 노래를 불렀다. 유럽을 중심으로 공공연하게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데 대한 부시의 불만이었다.

부 시 대통령이 9·11 테러를 계기로 세계에 미국편 또는 반대편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데는 다분히 새로운 국제질서에 관한 그의 편집증적 집착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패권국가 미국을 완성하려던 그의 노력은 두 전쟁으로 인해 실패했다. 오히려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인심을 잃고 패권적 지위도 약화됐다. 결과적으로 그도 전임자인 클린턴처럼 시간을 낭비한 꼴이 됐다.

2009년 초 국제주의를 앞세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새로운 국제질서의 패러다임에 대한 기대가 세계적으로 컸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지만 갖고 있었을 뿐 미국 내 극우정치세력의 목소리를 극복할 수 있는 지도력이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초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패권적 지위를 내놓을 의사조차 없었지 않나 의구심이 갈 정도다.

문제는 미국이 경제적으로나 국제정치적으로 패권적 지위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병이 들었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없다는 점이다. 세계 각국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기보다는 습관처럼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미국의 움직임만 바라보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좋은 예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다. 세계 금융위기가 몰아쳤을 때 많은 나라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국제통화관리체제의 출범을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변한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은 살아 남았으며, 심지어 성추문으로 물러난 스트로스 칸 총재 후임으로 관례에 따라 같은 프랑스 출신인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임명됐다. 투기꾼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는 어느 순간 주요 관심사 목록에서 사라졌다. 이 때문에 미국 월가의 투기꾼들은 금융위기의 책임을 지기는커녕 각국의 경기부양책으로 생긴 과실을 따먹었다. 새로운 국제질서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쉽게도 이를 놓쳤다.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꼽히는 중국은 어떤가. 중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으로서 입장을 고집할 뿐 세계 지도자로서 책임을 분담할 각오는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을 이끌고 있는 독일·프랑스는 그리스·스페인 등 유로존 국가의 경제위기조차 해결의 가닥을 잡지 못한 채 종종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또 아랍 민주화 운동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이들은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미국의 눈치만 보는 실정이다.

미국은 패권적 지위를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미국발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태 수습은 미국이 주도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호들갑 떨지 말고 냉정하게 사태의 흐름을 보면서 중·장기적인 국제질서의 변화를 주목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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