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도 보수도 없습니다. 흑인의 미국, 백인의 미국, 라틴계의 미국, 아시아계의 미국도 따로 있지 않습니다. 단합된 미국이 있을 뿐입니다.”
추락한 오바마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상원의원 후보 시절인 2004년 7월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에서 한 말이다. ‘이념과 인종의 초월’을 역설한 이 한마디에 힘입어 오바마는 그 해 말 선거에서 승리해 상원의원에 올랐고 상원 경력 3년 만에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더니 2008년 대통령 자리까지 거머쥐었다. ‘흑인 대통령 시대’를 처음 연 것은 민주당 전당대회장이 출발점이었다. ‘낡은 워싱턴’을 개혁하겠다는 피부색 검은 40대 초반의 젊은이가 힐러리 클린턴과 존 매케인이라는 큰 산을 넘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은 시대의 부름인 듯 했다.
집권 3년이 지난 오바마 대통령의 지금 모습은 어떤가. 지지도는 30%대로 추락했고 의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정치환경이 나아질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경기침체는 여전하고, 선동정치는 더욱 극성이다. 극단적 보수이념으로 무장한 티파티의 지지를 받는 미셸 바크먼 하원의원과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가 공화당의 대선 주자로 급부상하는 것을 보면 적어도 내년 대선까지 여야의 파당정치는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우스갯소리로 들렸던 민주당 대선후보 교체론이 심상찮게 오르내리는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중간선거를 전후해 ‘오바마 대통령 단임설’이 나돌더니 이제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후보로 세워야 한다는 구체적인 대안까지 나온다. ‘실패한 대통령’의 표본으로 거론되는 지미 카터와 오바마가 비교되기도 한다. 언론들은 “오바마 대통령으로는 정권재창출이 어렵다고 보는 민주당 인사들이 늘고 있다”고 전한다.
지금 미국은 대통령의 휴가로 시끄럽다. 경기는 바닥이고 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온나라가 비상인데, 대통령이 한가롭게 휴가를 즐길 때냐는 것이다. 작년에도 비슷한 말이 나왔다. 그 때도 지금처럼 매사추세츠주의 호화 휴양지인 마서스 비니어드 섬으로 휴가를 갔다. 달라진 것은 오바마의 ‘휴가 강행’을 백악관만 지지한다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휴가 갈 처지가 안되는 사람, 일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꼭 비싼 돈 들여 멀리 가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백악관이 전문요리사와 테니스코트, 볼링장, 수영장, 산책로, 골프 퍼팅연습장, 영화관 등을 갖췄으며 워싱턴 인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도 휴가 보내기에 손색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 보듬는 지도자 돼야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지에서도 국정을 챙길 수 있다는 식의 진부한 이유를 내세워 고급 휴가를 강행하는 것은 유감이다. 그렇게 따지면 대통령이 1년 내내 워싱턴을 비워도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특성상 미국 정부는 굴러간다. 미국민이 특히 어려운 때 어떤 지도자를 원하는지 오바마 대통령은 잘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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