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실업자를 구제하려고 재정지출 확대 정책을 취하려 하면 금융자본이 반대하고,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긴축·내핍정책을 실시하면 실업은 더욱 증가하고 대중의 투쟁은 격화한다. 선진국 정부와 자본가 계급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2007년 8월 시작된 지금의 세계 대공황은 자본의 세계화에 걸맞은 민족국가 사이의 협력체계 부족으로 말미암아 세계 자본주의 자체를 붕괴의 길로 몰아가고 있다. 빈부격차, 실업자, 무역·환율 갈등, 무력충돌 등을 없앨 수 있는 대안체제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과학기술의 거대한 발전이 약속하는 장밋빛 미래 앞에서 좌절하고 말 것이다.
대출 상환 능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온갖 미끼를 던져 주택담보대출을 개시한 금융기업, 이 비우량 모기지 대출을 근거로 온갖 엉터리 증권을 만들어 고가로 판매한 금융기업, 그리고 이 엉터리 증권을 구매하거나 보험해준 금융기업이 파산하면서 대공황이 폭발한 것이다. 처음에는 정부가 긴급구제금융을 제공해 금융기업의 파산만 막으면 공황이 해소되리라고 믿었지만, 파산을 모면한 금융기업이 배은망덕하게 정부의 채무 증가와 국채 상환 곤란성을 문제삼아 국가 신용등급을 낮추면서 긴축·내핍정책을 실시하게 강요했다. 긴급구제금융 때문에 증가한 예산적자와 국가채무를 국민의 생활수준과 사회서비스의 희생을 통해 메우라는 금융자본의 요구에 대항하여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스페인·영국·프랑스 등의 국민은 2010년 5월부터 계속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1년 1월부터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국민이 수십년 동안의 억압과 수탈에 대항하여 외세의존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독재정권을 알제리와 이집트에서 타도했고, 이 혁명은 리비아·시리아·예멘·바레인 등으로 번지고 있다. 2월부터는 미국의 각 주정부가 예산적자를 메우려고 공무원 해고와 임금삭감, 학교·보건소·도서관·소방서·공원의 폐쇄와 축소, 그리고 노인·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삭감을 시작하자 국민은 주정부 청사를 점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8월에는 영국 런던 중심지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고 이 폭동은 전국으로 퍼졌다.
이제는 금융적·재정적 혼란 위에 사회적·정치적 위기가 중첩되어 이 총체적 위기를 타개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정부가 실업자를 구제하려고 재정지출 확대 정책을 취하려 하면 금융자본이 적자재정을 문제삼아 반대하고, 다른 한편으로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긴축·내핍정책을 실시하면 실업은 더욱 증가하고 대중의 투쟁은 더욱 격화하며 경제성장률은 감소하고 재정적자는 오히려 더욱 증가하게 된다. 지금 선진국의 정부와 자본가 계급은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리하여 이들은 이슬람 혐오주의, 이민 억제, 불법 이민자 추방 등 극우단체를 지원하여 총체적 위기의 원인을 모호하게 만들고, 안보 위기를 강조하여 인권을 억압하는 조처를 취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이웃을 궁핍하게 하여’ 자기 혼자 대공황으로부터 탈출하려고 무역·환율전쟁과 무력적인 침략전쟁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세계경제는 더욱 축소하고 있다. 지금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 및 유로화는 그리스의 국채 상환 불이행 문제로 사실상 존폐 위기에 부닥쳤고, 미국은 양적완화를 통해 달러화를 대량 발행하여 달러화의 평가절하를 시도하고 있는데, 일본과 스위스는 자국 통화의 평가절상을 막기 위해 달러와 유로에 대한 최저 환율을 설정했으며, 리비아의 카다피 가족과 지지자에게 무자비하게 폭격과 사격을 가한 열강들은 석유 이권 분배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고, 세계의 두 경제대국 미국과 중국은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국제적 재앙과 가계 파산 및 대중의 폭동을 피하면서 세계대공황으로부터 탈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업자에게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미국의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연구소(EPI)의 최근 추계를 보면, 미국에서는 2007년 12월부터 지금까지 공황을 거치면서 사라진 일자리가 690만개이고 이 기간에 노동인구 증가로 필요하게 된 일자리가 430만개이므로, 현재 일자리는 1120만개가 부족하다. 이 일자리 부족을 앞으로 5년 동안 메우려면 매월 28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월평균 10만명의 노동인구 증가분 포함). 그런데 2011년 6∼8월 3개월 동안 월평균 일자리 창출은 3만5000개에 불과했는데, 이런 속도로 간다면 15년이 걸려야 공황 이전의 실업률 4%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9월8일 오바마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발표한 ‘일자리 법안’은 루스벨트의 뉴딜과는 전혀 성질이 다르다. 루스벨트는 공공사업, 실업급여, 사회보장을 통해 정부 주도로 실업을 해소하려 했으며, 소득세율을 크게 인상하고 특히 최고세율을 25%에서 80%로 인상했다. 반면 오바마는 부시의 부자감세(최고세율을 39.6%에서 35%로 인하)를 그대로 둔 채 일자리 확대를 위한 자금은 사회프로그램(노인과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의료보험, 퇴직 후 생활보장 등)의 삭감을 통해 조달하며, 민간기업에 혜택을 주어 실업자를 고용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결국 오바마 정책은 기업들이 실업자를 값싸게 고용하여 더욱 착취하도록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꼴이 되어 버리며, 사회프로그램의 삭감은 국민의 구매력을 삭감하여 오히려 경제성장률을 저하시키고 재정적자를 확대시킬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약 2000만원)인 한국에서는 모든 국민이 넉넉하게 잘살 수 있는 재원은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지난해에 사용한 공장·기계·원료를 보충하고 난 뒤 모든 국민에게 1년에 2000만원을 나누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4인 가족이 1년에 8000만원을 쓴다면 모든 가정에서 돈 때문에 걱정하고 자살하는 사건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무엇이 문제인가?
정치적 독재를 타도하여 모든 국민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대규모의 실업을 없애는 것도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길이다. 기업의 운영 목표를 이윤 추구가 아니라 국민의 필요 충족에 둔다면 실업자는 자연히 사라지게 된다.
민주주의가 주권을 가진 국민이 스스로 자기를 통치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소수의 권력자가 자유를 독차지하면서 국민 대다수를 억압하는 것이나 소수의 재력가가 부를 독차지하면서 국민 대다수를 기아선상에 두는 것은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치적 독재를 타도하여 모든 국민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대규모 실업을 없애는 것도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길이다. 실업은 구직자의 스펙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업가가 이윤을 얻기 위하여 취업자 수를 감축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기업의 운영 목표를 기업가의 이윤 추구에 두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필요 충족에 둔다면 실업자는 자연히 사라지게 된다. 예컨대 거대한 금융기업과 산업기업을 국민이 소유하는 공익사업으로 전환시켜 민주주의적으로 통제하면, 금융기업과 산업기업은 이윤 획득이 아니라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자금이 필요한 국민에게 싼 이자로 자금을 대부하고 국민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여 작업을 나누어 한다면, 일자리를 증가시킬 뿐 아니라 노동자에게 가족생활과 공장과 사회를 개선하는 새로운 구상을 할 시간을 주게 될 것이다. 주택·교육·의료·연금 분야에서도 공공성을 강화하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비용을 절약하면, 국민은 걱정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게 되며, 이 분야에서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것이다. 복지정책이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소득을 낳고 경제성장을 촉진하게 될 것이며, 복지와 성장 사이의 모순은 공연한 악담이 될 것이다. 국방비는 완전히 비생산적인 지출이기 때문에, 상대방 국가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대폭 삭감하게 될 것이고, 한창 자기의 전공분야에 몰두해야 할 청년을 가기 싫은 군대에 끌고 가서 자살하게 하는 징집제도는 당연히 수정될 것이다. 더욱이 1930년대처럼 국가 사이에 무역전쟁·환율전쟁이 심화되면서 무력전쟁이 터질 가능성이 있는 세계대공황에서는 해외시장보다는 국내시장을 개척하는 방법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복지제도의 확대가 특히 필요하며, 미국 정부와 자본에 종속하기 쉬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체결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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