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중경]민족생존을 위한 대전략이 시급하다
최중경 객원논설위원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위원국제정세 변화의 폭과 속도가 커지고 있다. 유라시아대륙 서편에서 러시아가 미국의 강력한 경고를 무시하고 크림반도를 전격 병합한 후, 동편에서는 상하이에서 중국과 만나 중-러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소련 붕괴 이전의 냉전시대를 연상시킨다.
미국은 일본과 연계해 중국의 팽창을 견제할 목적으로 일본이 군국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무제한 통화 팽창을 통한 엔화의 인위적 절하를 용인하면서도, 별문제 없는 한국의 환율정책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모순적 태도는 일본 경제가 활성화해야 재무장에 필요한 군비가 조달된다는 전략적 계산에 근거한다.
‘일본인 납치 문제를 재조사하면 대북 제재를 완화한다’는 일본의 입장이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와 다른데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고 있다. 미국을 향한 일본의 목소리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훌쩍 커진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해 일본 군대가 한반도에 상륙하는 문제로 한일 간 견해차가 있을 때 미국이 취할 태도가 예견된다. 미국은 일본을 더 신뢰하고 있다. 지난 70년간 일본이 들인 정성과 우리의 상대적 무관심과 안일이 낳은 결과다.
중국은 ‘새로운 대국질서’ 구호 아래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가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아시아 복귀를 선언한 미국과 충돌할 기세다. 평양이 중국 영토였다고 강변하는 중국은 일본과의 역사, 영토, 집단적 자위권 문제로 자국에 다가서는 한국을 내려다보고 방공식별구역에 우리 땅 이어도를 신규편입하고, 한국산 우유 수입 금지 같은 일방적 조치를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행보가 복잡한 지금 우리는 어떤가. ‘가장 잘하고 있는 게 외교’라는 여론조사와 부처 평가에 함몰돼 위기의식이 희박한 데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으로 국가개조론이 대두되면서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관한 논의를 거론하기 벅찬 상황이다. 올해는 청일전쟁이 있었던 갑오년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한반도 충돌’이라는 120년 전 상황과 유사하다.
국제무대에서 기민하게 움직여 생존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대통령은 웬만한 국내문제는 내각에 일임하고 국제무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 생존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대전략(Grand Strategy)’을 수립하고 대전략에 따라 체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대전략은 생존을 위해 외교무대에서 성취해야 할 목표를 인식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을 확인하여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구한말에 수구파 친일파 친러파로 나뉘어 주도권 다툼을 하느라 대전략 하나 제대로 수립하지 못한 채 민족이 노예상태로 전락했던 일을 잊으면 안 된다. 대전략이 없어도 국가가 몰락하지만 대전략이 잘못 수립돼도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자원 확보를 위해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일본이 대표적인 예다. 일본은 두 개의 전제를 세우고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했다. 첫째, 유럽에서 나치독일이 승리한다. 둘째, 미국은 전쟁을 싫어해 하와이 진주만을 초토화하면 평화협상에 응한다. 그러나 히틀러는 패했고, 미국은 일본을 응징했다.
동북아의 주도권을 향한 4강의 행보가 심상치 않은 이때 민족의 역량이 남과 북으로 갈리어 적대하는 상황은 당파싸움으로 인한 구한말의 혼란보다 못하다. 남북은 모든 것을 떠나 무릎을 맞대고 민족의 앞날을 위해 어떤 일부터 함께할 수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 원칙에 입각한 남북 관계 정상화를 고집하며 북측의 변화를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북측도 적대적 태도를 버리고 논의에 나서야 한다.
남과 북이 적대하면 주변 국가의 손쉬운 사냥감이 된다. 작은 예지만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의 꽃게어장 조업권을 중국에 내주느니, 남한이 북한에 꽃게잡이 어선을 지원하고 꽃게를 사면 남과 북이 윈윈한다. 서로 적대하니 중국어민 배만 불린다.
남북 대결에 목매는 강경론자들이 남과 북에서 동시에 환골탈태해야 민족의 앞길이 보인다.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산업협력 분야부터 시작해 ‘민족생존을 위한 남북 합작’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낙랑군 설치, 한일강제합방과 같은 치욕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남북 간 무력 충돌은 치욕을 되풀이하는 방아쇠임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최중경 객원논설위원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위원 choijk1956@hanmail.net
Leave a Reply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