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미국 경제, 웃고 있지만
손재민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15-01-28
수정: 2015-01-28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매일 신문에 끼워오는 할인쿠폰과 광고전단이 신문 본지만큼이나 두꺼운 나라. 그 쿠폰을 챙겨뒀다 쇼핑몰에 가서 물건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는 것이 여가활동인 사람들이 많은 나라. 물건을 쓰다가 100일이 안 되어서 가져가면 시시콜콜 따지지 않고 새것으로 바꿔주는 나라. 쓰레기 수거일이 되면 주택가 곳곳이 쓸 만한 가구, 생활용품들로 넘쳐나는 나라. 음식물쓰레기는 싱크대에 갈아서 하수처리하고,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는 나라. 집집마다 자가용이 두 대 이상씩 있는 나라. 두 세 가구가 살아도 될 것 같은 집에서 서민 한 가구가 사는 나라…. 이루 셀 수 없다. 미국에 산 지 1년 반쯤 된 내게 특이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렇게 소비와 관련된 것들이다.
미국이 축복받은 나라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그것은 분명 다른 어떤 사회도 닮기 어려운 특성이다. 그것을 풍요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그것은 돈의 힘, 소비가 받쳐주지 않고는 지탱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사회개혁을 외치는 시민운동은 소비자보호 운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최근 미국 현실정치에서 그나마 급진적인 주장을 한 사람으로 꼽히는 랄프 네이더도 소비자운동에서 출발했다. 그는 워런 버핏 등 억만장자들의 양심에 기대야만 빈곤을 줄이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뜻으로 <슈퍼리치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는 책을 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상•하원 합동 신년 국정연설에서 세금을 더 내야 할 대상으로 상위 1%, 슈퍼리치를 지목했다. 임기 7년차를 맞아 상•하원을 모두 상대 당에 내주고 레임덕이 된 대통령이, 법 통과 가능성은 별개로 하더라도, 의회 연설에서 당당하게 부자증세와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을 천명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가 뒤를 받쳐주기 때문이다. 유럽, 일본, 중국 등이 모두 경제불황으로 고투하는 때 지난해 3분기에 5% 성장률을 기록한 미국 경제는 선진국들 사이에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오바마의 증세와 규제 강화를 일자리 죽이는 정책이라 비판하려고 별러온 공화당은 요즘 들어 자신들이 주도한 재정적자 축소가 경제에 기여했다는 식의 포지티브로 전환했다. 이런 점들로 미뤄볼 때 공화당은 2016년 대선 국면에서 오바마의 ‘중산층 살리기’ 아젠다에 끌려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미국 경제의 호조는 상당 부분 행운에 빚지고 있다. 중앙은행의 비전통적인 경기부양 통화정책인 양적완화로 5년 동안 돈을 더 많이 찍어내고, 때마침 셰일층 석유 시추공법의 발전 등으로 국제원유가격 하락까지 겹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기초가 튼튼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인구통계국 조사에서 중산층(연소득 3만5000~10만달러)의 비중은 역대 최저인 43%로 떨어졌고 중산층을 이탈한 사람들은 계급 사다리 위로 올라가기보다 아래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민주, 공화당 모두 중산층 복원을 외친다. 중산층이 바로 미국 사회를 지탱할 끊임없는 소비 동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이 소비하는데 필요한 자원과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지, 그들이 쓰고 버린 쓰레기들은 어디로 가는지에 생각이 미치면 갑자기 아득해진다. 미국 경제를 이제 막 속도를 내기 시작한 외발자전거에 비유한다면 그 속도가 줄어드는 순간 자전거는 어떻게 될까. 속도를 줄이지 않고 끝없이 달리기만 하는 것이 가능할까. 모든 나라가 미국처럼 되는 것은 가능할까. 가능하다 하더라도, 가령 중국 같은 나라가 미국처럼 되는 것이 바람직할까. 지구라는 별은 어떻게 될까.
오바마는 최근 ‘유튜브 스타’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같은 체제는 언젠가 붕괴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오바마가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긴 관점에서 그것이 북한에만 해당되는 얘기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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