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외교 숙제 된 과거사의 포로
지난달 중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놓고 미국 내 전쟁포로 지원단체가 반대 성명을 낸 적이 있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에 포로가 됐던 이들을 돕는 ‘바탄과 코레히도 전투 미국 수호자 기념회’가 의회에 서면 성명을 보내 아베 총리에 대해 과거 전쟁 범죄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그로부터 8일 후인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는 태평양전쟁과 관련한 동영상을 홈페이지 링크를 통해 유튜브에 올렸다. 그런데 그 내용이 앞서 전쟁포로 지원단체의 주장을 반박하는 듯한 취지다. 국방부는 ‘과거의 적이 지금은 친구’라는 제목의 동영상에서 미군 참전용사들이 태평양전쟁 때의 격전지인 이오지마를 찾아 일본과 화해하는 내용을 담았다.
동영상엔 초로의 참전용사가 “우리는 예전에 (일본과) 적이었지만 지금은 친구”라고 말하는 장면이 흐른다. 다른 참전용사가 “내 나이 아흔 하나인데 남은 날이 많지 않다”며 역시 화해를 얘기하는 내용도 나온다. 일본을 방문한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이 아베 총리를 예방해 “미국과 일본 간의 ‘기즈나’가 (지금보다) 더는 강할 수 없다”고 호평한 직후였다. 일본어인 기즈나는 결속이라는 뜻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1일 미주기구(OAS) 정상회의 참석차 파나마시티를 찾아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만났다. 직전 오바마 대통령은 “요점은 미국이 과거의 포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 이틀 전 오바마 대통령은 자메이카 킹스턴의 한 대학에서 “우리와 쿠바 정부의 차이는 계속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과거의 포로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국방부 동영상은 각각 상대가 쿠바와 일본으로 다르지만 과거보다는 미래에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맥락이 같다. 이는 “과거의 적을 비난해서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이는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는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이나 “미래 이익이 과거의 긴장과 현재의 정치보다 중요하다”고 밝힌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의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과거보다 미래’는 일반론으로 보면 상식이다. 하지만 일본 아베 정부의 과거사 부정이라는 장애물을 만난 우리 정부로선 난감한 상식이다. 우리 역시 미래로 가고 싶지만 일본의 과거 지우기에 한국까지 함께 엮이며 과거에 연연하는 한국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외교에 필요한 전략은 과거냐 미래냐의 이분법 구도를 돌파하는 논리다. 과거로 돌아가려는 일본 정부를 미래로 돌리려는 노력이 우리의 입장임을 일관되고 세련되게 설득시켜야 한다.
나라 안도 난국이지만 나라 바깥도 흘러가는 정세가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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