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복 칼럼] 트럼프, 샌더스 그리고 코빈
대서양 양쪽에서 비주류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서쪽에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가 있다면 동쪽에는 제러미 코빈이 있다. 미국의 부동산 재벌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고, 민주당 쪽에서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 상원의원이 급부상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제1 야당인 노동당의 당수 선출을 앞두고 정통 좌파주의자인 코빈 하원의원이 압도적 우세를 보이고 있다. 앵글로색슨 민주주의의 양대 진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우선 트럼프. 소음으로 손님을 끄는 노이즈 마케팅이 그의 주특기다. 하루도 쉬지 않고 기행과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단언컨대 약발은 곧 떨어지게 돼 있다. 그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된다면 한국의 ‘허본좌’라고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못 될 이유가 없다. 트럼프 바람은 ‘찻잔 속 태풍’이다. 머지않아 미풍으로 끝나고 만다는 데 100달러를 걸어도 좋다.
다음은 샌더스. 그는 미국에서 무신론자보다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는 사회주의자다. 초대형 금융기관 해체, 공립대 무상교육, 15달러로 연방 최저임금 인상 등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급진적 공약을 내걸고 있다. 그 역시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데 50달러를 건다. 트럼프와 샌더스의 초반 선전 덕분에 오히려 젭 부시(공화당) 전 플로리다 주지사와 힐러리 클린턴(민주당) 전 국무장관의 양자대결로 대선 판세가 굳어질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영국의 코빈은 다르다. 노동당 당수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코빈은 올드 스타일 사회주의자다. ‘제3의 길’로 집권한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주창한 ‘신(新)노동당’ 노선에 반대한다. 그를 설명하는 데 좌파주의자란 말로는 부족하다. 급진 또는 과격이란 수식어가 필요하다. 지난 5월 총선에서 노동당이 참패한 것은 에드 밀리밴드 당수의 좌향좌 노선 때문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코빈은 더 왼쪽으로 가는 것이 노동당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학 무상교육, 부자증세를 통한 복지 강화가 단골 메뉴다. 영국 가디언지 칼럼니스트인 매튜 댄코다는 “코빈이 노동당 당수가 되는 것은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트럼프와 샌더스 돌풍은 미국 사회의 ‘좌(左)클릭’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1946~65년생)는 44:21로 보수 성향이 강한 데 비해 밀레니얼 세대(80~2000년생)는 30:28로 진보가 우세를 보이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쇠퇴하고 밀레니얼 세대가 부상하는 인구사회학적 변화가 정치 지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히스패닉과 아시아계 등 비(非)백인 인구 증가도 좌클릭 현상을 재촉하고 있다. 미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판결이나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합헌 판결, 주와 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러시 등 최근 미국에 불고 있는 좌파 바람은 이런 인구 구조 변화와 무관치 않다. 샌더스는 그 바람을 타고 있다. 트럼프 돌풍은 미국 사회의 좌클릭 현상에 대한 보수적 백인 남성 계층의 좌절감을 반영한다.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좌클릭 현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 다음 대선 역시 경제에서 승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고 클린턴은 중산층과 서민층을 겨냥한 경제 공약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불평등 해소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승리가 어렵다는 판단 아래 기업의 이익을 종업원과 나누는 이익공유제나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하고 있다. 임금 인상이 구매력과 소비 증대로 이어져 경제의 선순환을 촉진한다는 진보 진영의 논리를 받아들인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에 대한 향수를 자극함으로써 코빈이 노동당 당권은 차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2020년 영국 총선에서 승리하긴 어렵다. 중간을 공략해 보수당 지지자들의 표를 끌어와야 승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통적 좌파주의에 매달리는 것은 갓난아기 때부터 익숙한 담요로 몸을 감싸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어린애들과 다를 바 없다. 이미 세상은 글로벌 경쟁 체제와 소비주의를 수용하고, 개인주의와 기술적 발전을 받아들였다. 좌파 순혈주의로 집권을 노리는 것은 시대착오다.
성장을 촉진하면서 기업의 성과가 근로자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현실적 정책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 시대의 좌파가 할 일이다. 한국의 좌파는 과연 그런 능력과 의지를 갖추고 있는가. 노사 공영을 위한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한국의 좌파가 사는 길이다. 코빈이나 샌더스는 참고 대상이 아니다. 클린턴의 공약을 눈여겨봐야 한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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