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body Wins as Soon as Biden R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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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만 출마하면 ‘모두가 이기는 게임’?

한 여성 정치인이 있다. 퍼스트레이디 출신이어서 권력의 맛을 안다. 자신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고 믿으며 권위적이고 오만하다. 비밀이 워낙 많아서 언론과는 늘 불편하다. 정쟁의 달인이고 승부에 대한 집념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한국의 현직 대통령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평가다.

미국 언론은 절대 강자 클린턴이 독주하는 민주당의 대선 가도를 지루해하고 있었다. 무소속 버니 샌더스의 흥미로운 추격전 역시 당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클린턴과의 격차를 빠르게 줄이지 못하고 있다. 매체들은 ‘드라마’를 갈망했다. 그래서 언론들은 당선 가능성이 전무한 공화당의 나르시시스트 도널드 트럼프의 막장 서커스를 보도하는 데 열을 올렸다. 밋밋한 영양식보다 자극적인 불량식품이 더 잘 팔리는 법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민주당 측에서 조미료를 뿌리기 시작했다. 부통령 조지프 바이든이 대선에 뛰어들 것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온 것이다. 전직 부통령 앨 고어와 존 케리 국무장관이 민주당의 ‘심심한’ 레이스에 합류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고어와 케리 측은 이런 보도를 즉각 부인했다. 그러나 바이든 측은 확답을 회피한 채 시간을 벌면서 상당히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있다고 한다. 늘어지던 연속극에 새롭게 주연급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최근 테네시 주에서 발생한 총기사건 추도식에서 바이든은 숨진 해병대원들을 ‘아들들’이라고 부르며 많은 미국인을 울렸다. 그들은 바이든 부통령이 최근 뇌종양으로 장남(델라웨어 주 법무장관을 지낸 보 바이든)을 잃은 아버지라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더욱 감동했다. 바이든이 세 번째 대권 도전을 고려하게 된 것도 보 바이든이 생전에 아버지를 설득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많은 지지자들은 43년 전 바이든이 첫 부인과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는 사실 역시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고 바이든에 대한 애정이 단순한 동정심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민주당 당원들은 바이든이 2012년 대선 텔레비전 토론에서 공화당 후보 폴 라이언을 능수능란하게 요리하며 오바마의 재선에 크게 기여한 것을 잊지 않고 있다. 바이든은 상원의원과 부통령을 지내며 소박하면서도 친근한 이미지로, 때로는 썰렁한 농담과 실수를 하며, 평범한 ‘옆집 아저씨’로 각인돼왔다. 즉 바이든에게는 클린턴에게서 느낄 수 없는 ‘인간적인 매력’과 ‘진정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바이든은 대선 후보로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까? 바이든은 클린턴에 비하면 지지층이 약하다. 정책 면에서도 차별화되는 부분이 많지 않다. 이미 6800만 달러(약 809억원)를 모은 클린턴에 맞서 바이든이 얼마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초대 여성 대통령’이라는 브랜드를 압도할 만한 독창적인 면모 역시 눈에 띄지 않는다. 바이든은 경력과 스펙도 클린턴보다 떨어지고, 심지어 나이도 클린턴보다 다섯 살이나 많다. 그래서 칼 번스틴(닉슨을 하야시켰던 전설의 기자)은 고령의 바이든이 단임을 약속하고 출마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이든은 사람 좋은 것 빼고는 클린턴보다 나은 점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바이든, 민주당 경선 레이스의 ‘구원투수’ 되나

그런데도 바이든은 왜 대선 출마를 고심하고, 민주당 역시 이를 바라는 것일까? 그 답은 바로 클린턴이라는 인물 자체에 있다. 당 지도부는 클린턴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제까지 드러난 그녀의 약점 외에 앞으로 어떤 ‘지뢰’가 언제 어떻게 터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클린턴의 건강에 다시 이상이 생겨 ‘사회주의자’ 샌더스가 유일한 대안이 되는 상황은 민주당 당료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현 시점에서 ‘보험’이 시급하고, 같은 이유로 당의 거액 후원자들 역시 분산 투자 차원에서 바이든의 출마를 반기는 분위기다.

본선뿐 아니라 예선에서도 선두주자가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강력한 경쟁자끼리 치열하게 싸워서 충분히 검증받은 주자가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 선출될 후보 자신은 물론 소속 당과 대통령 선거라는 ‘특수’로 장사를 하는 언론에도 득이 된다. 바이든이 이기든 지든, 현직 부통령의 대선 출마는 생산적인 경쟁을 이끌어 충분히 검증된 후보를 선출하고, 예비선거의 흥행을 일으켜 민주당 진영의 모두가 이기는 게임을 만들어냄으로써,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을 높일 것이 명백하다.

바이든의 출마로 가장 큰 덕을 볼 후보는 물론 샌더스다. 클린턴과 바이든은 지지층이 상당히 중복되기 때문에, 샌더스가 클린턴과의 격차를 뒤집으며 의외의 ‘드라마’를 연출할 수도 있다. 바이든은 아직도 출마 여부에 대해 확언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을 끌면서 적절한 긴장감을 조성하다가 조만간 출마를 공식 선언하리라 보인다.

사실 바이든 부통령 출마설은 몇 달 전부터 떠돌던 이야기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시점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조짐을 보일까?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직 시절 개인 서버 사용으로 법적 논란을 일으킨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법무부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을 주요 변곡점으로 볼 수 있다. FBI가 얼마 전 문제의 서버를 압수했다. 올봄 의회 청문회에서 요구했을 때 별의별 법적·정치적 공방을 벌이면서 끝까지 공개를 거부한 그 서버를 클린턴이 ‘자발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8월 초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중 52%는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사법 당국의 조사가 필요하고, 38%는 클린턴이 뭔가를 숨기는 것 같다고 답했다. 유권자들은 ‘바보 정치인’보다 ‘유권자들을 바보로 보는 정치인’을 더욱 혐오한다. 클린턴의 열렬한 지지자 중에서도 그녀가 정직하고 선한 정치인이라고 믿는 이는 많지 않다. 전직 국무장관 클린턴의 경쟁력은 존경스러운 인품이 아니라, 비상한 지략이기 때문이다.

‘대세’ 클린턴은 지금 확실히 긴장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FBI의 수사는 앞으로 어디로 튈지 모른다. 1998년 빌 클린턴을 ‘레임덕’이 아닌 ‘데드덕(dead duck)’으로 몰고 갔던 ‘르윈스키 스캔들’ 역시 대통령의 불륜과 전혀 무관한 사안을 조사 중이던 특별검사에 의해 파헤쳐진 사건이었다.

미국의 사정당국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공명정대하다는 공신력이 있다. 그러니 당연히 민주당은 위기관리 차원에서 바이든이 필요하고, 이로 인해 미국의 대선 레이스는 점점 더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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