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칼럼] 미-중 대결 체제와 한반도
“중국과 같은 나라에 세계 경제의 규칙을 쓰게 할 수는 없다.”
유례없이 강경한 발언이 지난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흔들리는 패권에 대한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티피피)이 그의 뜻대로 “미국이 규칙을 직접 작성해 미국 상품을 팔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될지는 의문이다. 그보다는 “어떤 국제 통상 규칙도 세계 2위 경제 규모를 지닌 중국의 참여 없이는 완전할 수가 없다”는 중국 쪽 주장이 더 진실에 가깝다.
올해는 미국이 떠오르는 대국인 중국을 겨냥해 새로운 국제체제를 구축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아시아 중심축 정책을 처음 제시한 이후 6년 만이다. 이후 아시아 재균형으로 이름을 바꾼 이 정책은 미국의 군사·외교 자원을 대중국 견제에 집중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국제체제로는 미국의 하위 동맹자로서 일본의 군사 역할 확대(집단적 자위권 강화)와 티피피가 핵심이다. 미국은 이 두 가지를 올해 이뤄냈다. 적어도 10년은 쓸 수 있는 제도적 무기를 확보한 셈이다.
미-중 대결의 열점은 남중국해, 동중국해, 한반도와 그 주변 등 세 곳이다. 이 가운데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의 갈등은 상수다. 인공섬 건설과 군사시설 설치 등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과 영향력 강화 시도가 수그러들 가능성은 없다. 중국은 여기서 물러서는 순간 신형대국 위상도 함께 사라진다고 본다. 미국은 중국의 시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영유권 문제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데다 마땅히 강제할 수단이 없다. 군사력을 동원한다면 ‘힘이 곧 정의’라는 원초적 대결만 남는다.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가 걸린 동중국해의 중-일·미 갈등 또한 불안한 현상유지를 피하려면 힘의 논리에 기대야 한다.
반면 한반도와 그 주변은 변수가 많다.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삼각동맹은 알게 모르게 강화되고 있다. 한·일이 별도로 추진하는 듯한 첨단 이지스함 전력 강화와 공중급유기 도입 등은 비상시에 중국 본토를 겨냥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한·미 두 나라가 최근 서명한 작전계획 5015 또한 한국군의 원거리 작전 능력 강화를 전제로 한다. 삼각동맹 강화의 핵심은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다. 이 시도가 관철되면 세 나라 군사력은 사실상 하나로 묶이게 된다. 미국이 한국의 ‘글로벌 역할 강화’를 끊임없이 주문하고 대일 화해를 강조하는 데는 일관된 대중국 전략이 깔려 있다.
2012년 집권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에 꾸준한 관심을 쏟은 것은 한반도까지 대중 봉쇄망이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중국은 이 목표를 위해 전통적인 대북 우호관계가 일정 부분 손상되는 것을 감수했다. 중국은 이제 대북 관계 복원을 꾀한다. 북한도 대남·대중 관계 회복을 거쳐 대미 대화 쪽으로 향하는 조짐을 보인다.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북한 노동당 창건 70돌 기념식 참석은 그 분기점에 있다.
북한 문제는 풀기가 쉽지 않은 구조를 갖는다. 미국은 손가락으로는 북한을 가리키면서도 중국이라는 달을 겨냥한다. 중국은 그 빌미를 만드는 북한을 못마땅해하면서도 끌어안는다. 미국과 중국은 문제 해결사라기보다 현상유지 세력에 가깝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미-중 대결은 서로를 강화시키면서 고착돼왔다.
북한 문제 해결은 동북아 평화·협력 구조 구축의 핵심에 있다. 이를 인정한다면 적어도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는 대결 체제를 바꿔야 한다. 핵·미사일 문제는 우리나라와 중국이 동력을 제공하고 분위기를 만들 수는 있지만 완전히 풀 수는 없다. 본질적으로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전제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대타협이다. 미국은 삼각동맹 강화 시도를 약화시키고 중국은 핵 포기에 대한 북한의 반발과 불안감을 중화시켜야 한다. 우리가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전체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세력임을 분명히 하는 것은 필수다. 16일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은 이 모든 것을 이뤄내기 위한 산실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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