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칼럼] 위안부 문제에 왜 오바마까지 나서나
지난 12월28일 한·일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 인정이나 분명한 사과 표명도 없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를 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하면서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이전해야 일본이 10억엔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는 우리 국민들을 격앙하게 했다.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반발과 재협상 요구가 야당과 종교계, 대학가, 해외 교민사회로까지 번져나가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한국에 대한 냉소 분위기를 보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궁지에 몰리고 있는데 미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칭송하고 나섰다. 합의 발표 직후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일 양국 정부가 민감한 과거사 이슈인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합의를 도출한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1월7일에는 대통령까지 나섰다. 북한의 4차 핵실험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박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오바마는 “정의로운 결과를 얻어낸 박 대통령의 용기와 비전을 높이 평가한다. 미국은 합의 이행을 적극 지원할 것이다. 위안부 관련 합의 타결은 북한 핵실험이라는 도전에 대한 한·미·일의 공동 대응능력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라고 했다. 위안부 합의가 ‘정의로운 결과’라니? 그게 어떻게 북핵 관련 한·미·일 공동 대응능력을 강화시켜 준다는 말인가? 그리고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합의 이행을 미국이 지원한다는 건 또 무슨 뜻인가?
아베 일본 총리와 통화하면서 오바마는 “위안부 합의로 한·미·일이 협력하여 유엔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베가 충격적인 말을 했다.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합의된 데 대해 미국의 이해와 협력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해와 협력에 감사한다? 이건 미국이 위안부 문제가 일본에 유리하게 매듭지어지도록 막후 조종을 했다는 말 아닌가? 이쯤 되면 협상은 한·일이 했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기획과 지휘하에 협상이 진행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면 미국은 왜 이렇게 위안부 문제에 적극 개입을 했나? 빠른 속도로 경제·군사 강국이 돼가고 있는 중국을 견제해야만 하는 미국의 대중정책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2차대전 후 미국이 동아시아에 구축한 기득권에 도전해오는 중국을 견제해야만 하는데, 미국은 지금 ‘재정절벽’ 때문에 자력만으로는 그럴 힘이 없다. 그 해결책이 일본의 우경화를 눈감아주고 자위대의 해외출병까지 보장하면서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한·미 동맹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중국 견제 한·미·일 공조체제를 강화해야 하는데, 위안부 문제로 한·일 관계가 삐걱거리니까 초조해진 미국이 직접 한·일 합의 도출을 독려하게 된 것이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냉소는 이런 한·미·일의 동향과 무관치 않다.
박근혜 정부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넘기지 않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12월28일 서둘러 위안부 문제를 봉합했지만, 사실은 미국의 고위관료가 이미 그런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다. 한·일 합의 12일 전인 12월16일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한국의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한·미·일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한·일이 서로 유연성과 용기를 발휘해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전향적 접근을 하도록 독려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사람들, 어떨 때는 꽤 솔직하다.
노무현 정부의 노력으로 2012년 4월17일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을 환수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환수 일정을 2015년 말로 미뤘고 박근혜 정부는 환수 일정이 아니라 환수 협의 자체를 2022년 이후로 미뤄버렸다. 국민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한·일 과거사 중 가장 민감한 문제까지 우리 뜻대로 협상하지 못하고 미국 대중정책의 일환으로 처리되는 걸 목격하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군사주권을 미국에 맡겨 놓으니 외교에서도 주권적 조처를 하기 어렵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의 위상이 초라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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