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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미국 대선 관전기 1

미국 대통령선거 경선이 후반부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미 전역에서 열린 유세 현장을 23번 직접 찾았다. 난립했던 후보들이 어느 정도 정리된 이 시점에서 ‘중간 관전평’을 적어 본다.

힐러리 클린턴은 ‘파이터’였다. 보통 때는 미소를 잃지 않지만 연설의 핵심부에 다가갈 때, 뭔가 마음에 안 들어 고개 돌려 참모들을 바라볼 때의 눈빛은 매섭고 무섭기까지 했다.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클린턴 곁에 붙지 않고 늘 5m가량 뒤에 떨어져 움직였다. 주연과 조연이 확실히 구분됐다. 변호사 같은 말투, 유세장 입구에 버티고 있던 시커먼 검색견, 여기자 일색이던 ‘클린턴 전담기자들’도 인상적이었다. 이색적이었던 건 ‘문고리 권력’이라 불리는 개인비서 후마 애버딘(39). 클린턴이 청중과 어울리고 있을 때 몰래 다른 청중과 셀카를 찍으며 ‘개인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파워’를 느낌과 동시에 향후 클린턴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버니 샌더스는 ‘부담 없는 옆집 할아버지’였다. 유세장의 에너지로 따지면 샌더스가 단연 1위였다. 대통령 욕심보다는 개인적 신념이 앞서 보였다. 그래서인지 연설 내용이 감동적이고 진심도 느껴졌지만 연설 솜씨는 2008년 버락 오바마만 못했다. 뭔가 부족한 2%가 있었다. 75세의 고령 때문인지 계속 물을 들이켜고 기침을 하는 게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 유세장에서 한·미 안보협력을 강조하며 기자의 손을 꽉 잡았을 때의 악력은 20~30대 못지않았다. 뉴햄프셔 유세장에서 무대에 오르기 전 대기실에 있는 그를 문틈 사이로 본 적이 있다. 부인 제인이 양복 어깨 부분을 계속 털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비듬을 털어주는 듯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유세장은 ‘공기’부터 달랐다. 지지자들의 눈빛은 이글거렸고 경호원들도 거칠었다. 연설은 조잡하고 좌충우돌했지만 ‘주목도’는 압권이었다. 청중의 눈과 귀를 끌어당기는 제스처와 화법은 천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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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이해력에선 테드 크루즈나 마코 루비오가 뛰어났다. 두 사람은 인공지능 ‘알파고’와 비슷했다.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정작 유권자들은 40대의 두 초선 상원의원에게 알파고가 아닌 ‘튀는 패기’를 원했다. 그들이 보인 ‘어울리지 않는 노숙함’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

유세장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후보들의 내공이 엄청나다는 점이었다. 성향이야 제각기 다르지만 어떤 현안에도 막힘 없이 수십 분간 자신의 생각을 깊이 있게 피력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웬만한 학습량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경지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의정활동을 아무리 잘하는 의원들도 괘씸죄, 짜깁기 여론조사에 걸리면 하루아침에 공천에서 날아간다. 그런 정치판에서 제대로 된 지도자가 나오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차라리 알파고에게 공천을 맡기자”란 말이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트럼프를 손가락질하고 흉볼 처지가 아닌 게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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