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 지난해 6월 대선 출마 선언 후 그가 보여준 분열적, 폭력적 막말에 고개를 가로젓던 세계는 이제 트럼프가 이끌 미국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트럼프가 미국에서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와 이를 해소하지 못한 기성 정치권에 던진 자성의 메시지는 간단치 않다. 하지만 미국의 대통령은 세계의 지도자이기도 하다. 그의 외교·경제 구상이 현실화한다면 세계는 대혼란과 대결 국면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고립주의 노선을 통한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멕시코 이민자들을 범죄자라고 부르고 모든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테러 정보를 미리 알아내려면 물고문 이상도 하겠다고 말했다. 인권이란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그에게 있는 것인지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들이다. 트럼프가 바라보는 한국은 도저히 우방이라고 믿기 어렵다. 그가 “북한이 한국·일본과 전쟁을 한다면 그건 그들의 일이다”라고 말한 대목에 이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절반인 9200억원을 내고 있는데도 무임승차라고 비판하고 자체 핵무장을 하라며 국제적인 핵 비확산 노력을 허무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는 지난 3일 인디애나주 경선이 끝난 뒤 “나는 신이 창조한 최고의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모든 나라에 혜택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트럼프가 미국인 일자리와 소득을 우선하는 무역정책을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무역을 ‘제로섬 게임’으로만 보는 그의 사고가 대통령이 돼서도 바뀌지 않는다면 세계 경제질서는 크게 흔들릴 것이다. 예컨대 그는 중국을 두고 “우리 돈, 일자리 다 가져갔다. 세계 역사에서 가장 큰 도둑질”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직면한 문제의 원인을 나라 밖으로 돌리는 트럼프에게선 어떤 책임감이나 진지함도 찾아볼 수 없다. 그가 협상에 능한 사업가라 백악관에 입성한다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글로벌 재앙이 될 것이란 우려가 결코 무리가 아니다. 트럼프는 자신이 미국의 수치가 되고 있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제사회의 집단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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