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비롯해 캐나다, 유럽연합 등 15개국은 그제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취지의 공동발언문을 채택했다. 장승화 WTO 분쟁해결기구(DSB) 상소위원(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연임에 미국이 반대 입장을 고수한 데 따른 것이다. 통상적인 관례였던 연임 절차에 미국이 반대하는 건 WTO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정치적 개입이라는 지적이 많다.
WTO 상소기구는 국제 통상분쟁에 관한 ‘대법원’ 기능을 한다. 상소위원은 7명으로 임기 4년에 중임이 가능한데 지금까지 연임이 거부된 전례가 없다. 한국인 최초로 상소위원에 선임된 장 위원의 임기는 지난 5월31일까지다. 미 측은 WTO 상소기구 결정이 회원국이 위임한 권한을 넘어섰다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개별 위원의 연임과 연계할 문제인지 선뜻 납득이 안 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5월31일자 사설에서 “(연임 반대는) 미국이 제기한 소송에서 장 위원이 미국 편을 들지 않은 데 대한 불만 때문”이라며 “WTO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제적 위상마저 흔드는 처사”라고 썼다.
이번 논란이 우려스러운 건 미국 내 보호무역주의 강화 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데 있다. WTO 상소기구는 중국에 대한 ‘시장경제지위’ 결정을 앞두고 있다. 중국이 시장경제지위를 인정받으면 반덤핑 공세를 피할 ‘방패’를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와 통상 갈등을 빚는 미국이 WTO에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유독 장 위원 연임에 제동을 걸면서 우리 정부에 대한 우회적인 통상 압박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최근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는 한 조찬강연에서 “한국은 여전히 사업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법률시장 개방을 거듭 촉구해 통상 압박 논란이 일었다. 대선 국면에 점차 뚜렷해지는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장 위원 연임 문제를 WTO 독립성 침해 논란을 넘어 미·중, 한·미 통상 갈등 사안으로 키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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