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iar and a Drunk Un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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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와 술취한 삼촌

대통령으로 ‘거짓말쟁이’와 ‘술취한 삼촌’ 중에서 한 명을 고르라면 누구를 골라야 할까. 대선을 앞둔 미국 시민들의 현실적인 고민이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8월 부동층으로 분류되는 12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는 미국 유권자들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이들에게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묘사할 단어 하나를 고르라고 했더니 가장 많이 거론한 게 거짓말쟁이(liar)였다. 평생을 정치적 술수로 살아온 권력욕에 사로잡힌 거짓말쟁이.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말하는 것을 듣기도 싫은 술취한 삼촌(drunk uncle)으로 묘사했다. 51세의 애널리스트 셰리 라밸리는 “클린턴은 믿을 수가 없고, 트럼프는 행동하는 것을 보라. 매일 TV를 켤 때마다 고개를 젓게 된다”고 총평했다. 인터뷰 대상자 중 4명은 진지하게 제3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e메일 스캔들과 클린턴재단 기부자 문제는 거짓말쟁이 클린턴이란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켰다. 하지만 클린턴의 해명은 늘 달랐고 최근에는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연방수사국(FBI)이 지난 2일 공개한 수사보고서를 보면 클린턴은 조사관의 질문에 39번이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멕시코 국경에 최첨단 장벽을 쌓겠다는 트럼프는 할 말과 못할 말을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잖은 시민들에게는 참 불편하다. 추수감사절이면 찾아와서 술에 취해 미국 백인의 삶이 피곤해진 것은 다 ‘외국놈’ 때문이라며 전부 추방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는 속물 삼촌 같다.

이런 후보 둘 중에서 한 명을 골라야 하는 미국 유권자 입장을 생각하면 정말 답답할 듯하다. 투표는 해야 하는데 누구에게도 표를 줄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유권자들이 그래서 찾아낸 해법은 바로 상대 후보 단점 찾기다. 좋아하는 후보가 없어도 싫어하는 후보는 찾기가 쉽다. 술취한 삼촌은 별로인 걸 인정하지만 그래도 거짓말쟁이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식이다.

퓨리서치센터의 최근 조사를 보면 클린턴 지지자 중 클린턴을 위해 투표하겠다는 사람은 53%, 트럼프가 싫어서 클린턴을 찍겠다는 사람은 46%였다. 트럼프 지지층은 더 심했다. 트럼프 지지자 중 트럼프를 위해 투표하겠다는 유권자는 44%였고, 클린턴이 싫어서 트럼프에게 투표하겠다는 사람은 그보다 많은 53%나 됐다. 트럼프 지지자의 절반 이상은 트럼프가 대통령감이라서가 아니라 클린턴을 떨어트리기 위해 투표하는 사람인 셈이다. 2008년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지지자들 중 68%가 오바마를 위해 투표하겠다고 답했던 것과 비교하면 후보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양자대결 구도였던 2007년 대선 당시 느낀 허탈감이 새삼 되살아날 정도다.

상황이 이러니 대선전에서 열정은 찾기 어렵다. 전 세계에 영향을 줄 미국의 외교·경제 정책에 대한 토론은 사라지고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만 넘친다. TV광고도 상대 후보 공격에 주력하면서 클린턴의 대선 광고에는 후보 본인보다 경쟁자 트럼프가 더 많이 등장한다. 이쯤 되면 미국 정치도 양자택일 구도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도적 해법을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공고한 양당제의 틀을 허물고 제3정당, 제3후보의 선전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달 21일 ABC와 여론조사기관 SSRS의 온라인 조사에서 응답자의 35%가 제3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현 선거제도하에서 제3당에 주는 표는 사표가 될 확률이 사실상 100%다.

당장 전국 여론조사 평균 15% 지지율이라는 대선후보 TV토론의 문턱만 낮춰도 유권자들은 거짓말쟁이와 술취한 삼촌의 말싸움을 지켜보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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