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태평양전쟁의 역사가 서린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했다. 1941년 일본군 공습으로 침몰한 미군 함정 애리조나호 위에 세워진 애리조나 기념관을 찾아 헌화하고 추모했다.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이뤄졌는데 외신들은 `역사적 화해`의 행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아베 총리는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언급했지만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사죄나 반성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전쟁에서 싸웠던 미국과 일본이 이제 `희망의 동맹`이 됐다”며 미·일 동맹 공고화에 무게를 싣기 바빴다. 사죄하지 않으면서 화해 제스처만으로 실리를 챙기는 아베식 외교를 펼친 것이다. 게다가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 개정 추진으로 전쟁 가능한 국가를 지향하면서도 “전후 70년 평화국가의 행보에 조용한 긍지를 느낀다”며 `부전(不戰)의 맹세`를 견지해온 데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은 전쟁 희생자 추모라기보다는 미·일 동맹 강화를 통해 국익을 얻으려는 포석으로 봐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행여 흔들릴 수도 있는 미·일 동맹을 공고히 하고 새로운 틀을 짜려는 계산적인 접근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11월 대통령 당선자 신분인 트럼프와 이례적으로 회담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인 데다 내년 1월 트럼프 취임 일주일 이내에 미·일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도 조율 중이다.
미국과의 신밀월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주도면밀한 행보를 보이는 아베 총리와 비교하면 북한의 핵 도발, 중국의 굴기에 맞서 한·미·일 동맹을 강화해야 하는 우리의 대응은 너무 한가하기만 하다. 이러다 한·미·일 삼각 동맹에서 우리만 외톨이 신세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특히 주변 4강에 트럼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아베 총리 등 `스트롱맨`들이 등장하면서 동북아시아에 격랑이 예고되고 있다. 탄핵정국을 맞아 리더십 공백이 우려되고 있는 만큼 외교안보 라인을 강화해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서 국익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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