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의 본색을 예상보다 빨리, 더 강력하게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다자간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한 무역협정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걷어찬 것이다. 전날 백악관 참모진 시무식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추진을 밝힌 데 이어 자국 위주의 보호무역주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정도로 강력하게 보호무역주의를 드러낼지 대부분은 예상하지 못했다. 세계경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이 다자간 무역협정에서 발을 빼고 보호무역주의로 나가면서 세계무역 질서는 대격변의 전환기를 맞게 됐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는 세계시장의 위축, 미·중 간 주도권 경쟁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이 해외로 나가고, 외국의 싼 제품이 물 밀듯 들어와 미국의 일자리 감소, 부채 증가, 중산층 붕괴를 일으켰다고 본다. 따라서 공장을 불러들여 일자리를 늘리고 이를 통해 성장, 궁극엔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겠다고 한다. 언제든 주먹을 휘두를 준비도 돼 있다는 뜻이다. 조약이나 협상을 무효화하거나 재협상을 벌여 유리하게 바꾸고, 말을 듣지 않으면 막대한 ‘국경세’를 물려 굴복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명목상 ‘미국 우선주의’이지만 힘의 우위를 통해 패권을 휘두르겠다는 것이다. “실패한 무역협정을 거부하고, 미국에 해가 되는 국가에는 철퇴를 내릴 것”이라는 백악관의 경고는 노골적이다.
한국이 TPP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안심할 처지가 아니다. 미국이 보호무역주의의 간판을 내건 이상 한국에 닥칠 위협은 시간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선기간 중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미국 내 일자리 10만개가 줄어들고 무역적자도 두 배로 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의 대미 수출 비중은 13.4%, 대미 무역흑자 규모는 230억달러에 달한다. 미국이 힘으로 밀어붙이면 재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다. 또 한국을 중국 등과 함께 환율조작국으로 몰아갈 우려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룰 브레이크’로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기업들은 앞으로 보호무역주의의 높은 장벽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부와 기업들은 머리를 맞대고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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