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플린 백악관 보좌관의 낙마 / 이용인
마이클 플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러시아와의 ‘부적절한 접촉’으로 지난 13일 결국 사임했다. 같은 날 터진 ‘김정남 피격 사건’으로 묻혀버렸지만, 제법 큰 뉴스였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른바 ‘문고리 권력’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다. 제2차 세계대전 뒤 국무부가 주도하던 외교안보 정책 수립 과정에서 벗어나 국방부와 정보부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1947년 만들어졌다. 정책을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각 부처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특정 부서의 정책에 힘을 몰아줄 수 있다.
대통령의 성향에 따라 국가안보보좌관의 위상이 부침을 거듭하기는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행정부의 첫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제임스 존스는 존재감이 없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결국 2년을 채우지 못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오바마 대통령 ‘최측근’의 요구가 그의 사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의 헨리 키신저,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등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했다.
플린 전 보좌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렸다. 미국 언론에선 그가 극단적인 반이슬람 성향을 지니고 있고, 국방정보국장 시절 독단적인 의사결정 행태를 보여줬다는 악평이 주를 이뤘다. 워싱턴 외교가에서 금기시돼 있는 ‘친러시아’적 행태들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는 연설자로 나와 “힐러리를 구속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치군인’이라는 비아냥도 나왔고, 각 부처의 이견을 조율할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었다.
국방부 고위직 인선을 두고도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불협화음을 겪고 있다는 관측도 계속 나돌았다. 매티스 장관도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플린과의 관계를 ‘우려’하자, “좋은 아이디어가 이기기 마련”이라며, 갈등이 있을 수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편의 평가도 있었다. 그가 적이 많은 것은 국방정보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지역 정세 및 정보 분석가들을 펜타곤에서 해당 지역 사령부로 보낸 ‘개혁 작업’이 직원들의 반발을 많이 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플린의 사임을 두고, 당시 척을 졌던 정보기관들의 ‘조직적인 흔들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걱정이 컸던 탓인지, 플린은 애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크게 엇나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접촉하면서 냉랭했던 중국 관계를 풀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직접 주미 중국대사관을 방문한 것을 두고 ‘창의적’이라는 미국 언론의 평가도 있었다.
어찌됐든 그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존중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끌어내는 데 나름 역할을 했다. 그의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했던 개인사 때문인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선 유독 애정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플린의 사임이 불러올 파장은, 순방향이든 역방향이든 생각보다 클 수 있다. 플린의 사임으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나 매티스 국방장관 같은 대외정책 신중파들의 입지가 더 커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극우주의적 성향의 트럼프 대통령 최측근인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등이 버티고 있는 한, 두 사람의 임무는 극단적 정책을 막는 ‘문지기’ 역할 정도에 그칠 수도 있다.
신임 안보보좌관이 임명되면 국가안보회의 직원들의 상당 부분도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대북 정책을 포함해 현재 진행 중인 대외정책 검토 작업들의 경로도 바뀔 수 있다. 한국은 새 행정부가 출범해 외교안보 진용을 갖출 때까지 약간의 시간을 번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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