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배치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비용 10억달러(1조1300억원)를 한국이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이미 이런 의사를 통보했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또 한국과의 무역에서 적자가 크게 나고 있다며 “끔찍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하거나 종료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7월 미국과 사드 배치 합의를 발표하면서 “사드 전개와 운용 유지 비용은 미군이 부담하고, 우리나라는 부지와 기반시설을 제공하게 된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이날 발언은 사드 배치의 전제인 미국 부담 원칙을 아무런 설명 없이 뒤집는 것이다. 또 한·미 FTA에 대해 재협상을 넘어 폐기까지 거론했다는 점은 충격이다.
사드를 기습 배치한 트럼프 정부가 이제는 사드 비용도 한국이 대라며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한국의 주권과 한국인의 자존심을 침해하고 무시하는 언동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후임을 뽑는 대선이 10여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사드 발언이 대선의 변수가 될 게 분명한데도 트럼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대선 국면을 활용해 차기 정부를 압박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사드 배치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보복을 당하는 한국의 처지를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무신경이 놀랍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후 중국이 한국을 속국인 것처럼 언급했다고 공개하는 무지를 보인 바도 있다. 한국을 존중하는 뜻이 전혀 없음을 보여주는 오만한 태도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다.
트럼프가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와 국민의 이익을 해칠 자유는 없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핵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사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한국에 주둔한 미군을 보호하는 것이 1차적 목적이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무시하고 한국의 사드 배치 비용 부담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은 지독한 사실 왜곡이다. 그의 언급이 한국으로부터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더 받아내거나 앞으로 있을지 모를 한·미 FTA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포석일 수 있다. 그래도 트럼프의 말은 부적절하다. 한·미 FTA는 한쪽 당사국이 다른 당사국에 협정 종료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한 날부터 180일 후에 종료되게 돼 있다. 협정을 종료하든 개정하든 절차에 따르면 될 일이다. 양국 정부가 합의하고 의회가 비준한 국가 간 합의를 폐기하겠다며 엄포를 놓는 것은 책임 있는 국가 지도자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더구나 한국인들의 안보 불안을 이용하여 협상에서 더 얻어내겠다는 발상이라면 천박한 장사꾼의 수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항공모함을 파견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 것도 한국에서 돈을 뜯어내기 위한 쇼가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동맹을 앞세우면서 뒤로는 장사로 이문을 남기려는 것은 동맹국을 대하는 정상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
트럼프의 사드 비용 부담 전가 발언은 양국 간 이면합의 가능성을 포함해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드에 대한 합의 내용에 변함이 없다”면서 부인만 하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한민구 국방장관은 사드 배치 비용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언제 어떤 요구를 받았는지 다 밝혀야 한다. 신뢰를 잃은 정부 때문에 사드 배치를 위해 한국이 무엇을 더 감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의 사드 언급으로 차기 정부가 사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사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사드 배치에 대한 전제 조건이 깨졌기 때문에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그에 앞서 차기 정부와 국회는 편법과 거짓으로 얼룩진 박 전 대통령과 황 권한대행의 사드 배치 경위를 규명하는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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