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평창 외교, 북한과 미국 사이에 넛크래커되는 거 아닌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을 보이콧했다. 이번 올림픽을 북·미 대화의 전기로 삼고자 했던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날 오전 청와대는 사전 리셉션 헤드테이블 좌석 배치도를 공개했다. 여기에는 펜스 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 좌측에 앉는 것으로 돼 있었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펜스 부통령의 맞은편에 위치한 자리였다. 펜스 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문 대통령이 환영사를 마칠 때까지 입장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입장한 것은 건배사가 끝난 후였다. 펜스 부통령은 리셉션에 참석한 주요 국가 정상들과 악수한 뒤 5분 만에 퇴장했다. 김영남과는 악수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이후 브리핑을 통해 “펜스 부통령은 미국 선수단과 6시 30분 저녁 약속이 되어 있었고 사전 고지도 했다”고 해명했다. 이날 리셉션은 이번 대회 외교행사 중에서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 펜스 부통령은 그중에서도 가장 비중 있는 초청 인사였다. 이렇게 중요한 인물이 자국 선수단과의 만찬을 이유로 행사에 빠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게 사실이라면 한국 외교의 참사다. 정황상 펜스 부통령은 김영남과의 동석을 피하기 위해 행사를 보이콧한 것으로 보인다. 펜스 부통령은 리셉션에 앞서 제2차 연평해전에 참전한 참수리 357호정과 천안함 기념관을 둘러봤다. 탈북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북한은 자국민을 가두고 고문하고 굶주리게 하는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북한을 대표해서 나온 김영남과 같은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이 어색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림픽 참석을 위해 방한한 외교 사절들을 만나 남북 대화 지지에 감사하는 한편 북·미 대화로 이어질 수 있게 해 달라고 협조를 당부했다.
그런데 미국은 지금까지 한미 관계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냉담함으로 반응했다. 도대체 한미 관계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문 대통령은 10일 김영남 위원장, 그리고 김정남 위원장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오찬을 함께한다. 이 자리에서 어떤 얘기가 오갈지는 미지수지만 지금 북한의 목표가 한미 간 이간을 통한 제재 완화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해온 평창 평화 외교가 북·미라는 넛크래커에 낀 건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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