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cticality versus Justification

<--

10년 전 미국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연방준비위원회(Fed·연준) 의장으로서 위기 극복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하는 벤 버냉키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본 적이 있다.

대다수의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연립주택이 들어선 마을에서 한 주택에 화재가 발생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화재 발생에 놀라기는커녕 진작 일어났어야 할 일이 이제야 일어났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이유는 화재가 발생한 집의 아저씨가 매일 침대에 누워서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집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데, 그 집 아저씨는 집 안에서 그것도 침대에 누워 TV를 보며 매일 담배를 피웠고, 사람들은 언젠가 그 담뱃재가 침대에 떨어지면 큰 불이 날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으나 그 아저씨는 이를 무시하고 계속 흡연을 즐겼다.

이때 버냉키는 질문을 던졌다. 이런 상황에서 마을 사람을 그 못된 습관을 가진 아저씨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화재를 방관하고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아야 하겠는가. 당연히 마을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화재 진압은 어려울 것이고, 그 아저씨는 많은 재산 피해를 보며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따끔한 교훈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마을의 집들이 서로 벽을 마주 대고 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한 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를 재빨리 진화하지 않으면 옆집으로 불길이 옮겨 붙어 온 마을이 잿더미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아저씨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온 마을의 집을 다 불태우는 것은 정당화되기 힘들다는 것이 버냉키의 주장이다.

미국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서민들은 정부가 나서서 거대한 금융기관을 돕는 것에 반대했다. 금융기관들이 막대한 이익을 거두기 위해 위험한 행동을 했고, 그 결과 위기가 발생한 측면이 있는데 잘못한 사람을 혼내지 못할 망정 잘못이 없는 국민의 세금으로 이를 도와서는 안 된다는 명쾌한 논리를 내걸었다. 하지만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은 월스트리트 금융기관을 지원하게 된다. 금융기관에 난 화재가 전 미국으로 번질 것이었기에 잘잘못을 가릴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위기의 경우에는 과실을 따지기 어렵다 해도 평상시에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의 행동을 철저히 규제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영국 번리라는 작은 도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은행을 만들려는 데이브라는 사업가의 이야기가 있다. 미국과 달리 금융기관을 철저히 감시하는 영국 정부는 미국에 비해 위기 발생 빈도가 작다는 이점이 있지만, 규제에 꽉 묶인 금융기관이 비효율적이기 그지없다고 한다. 사업을 하는 데이브는 제대로 기능도 하지 못하면서 높은 대출 이자만 챙기는 은행에 반기를 들고 자신이 은행을 만들려고 시도하지만 정부 규제 때문에 새로운 은행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수년간 투쟁해 은행을 만들었다. 이런 데이브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자유롭게 은행을 허용해 주는 미국의 정책이었다.

사람들은 실리와 명분을 놓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결국 실리를 버릴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About this publi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