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타계한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 그의 ‘미국 3부작’ 중 하나가 장편소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다. 사랑과 배신, 복수의 광기 속에 주인공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여론 재판을 받고 망가지는 과정을 그려냈다.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기,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국에 몰아칠 때다.
매카시즘(McCarthyism)은 1950~54년 미국을 휩쓴 반(反)공산주의 사상이다.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공산주의자 사냥에 앞장섰던 조지프 R 매카시(Joseph R. McCarthy)의 이름에서 따왔다. 전후 보수 강경분자가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시도였다. 정적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고 마녀사냥을 일삼았다. 당시 많은 지도층과 예술계 인사가 공산주의자로 몰려 고통을 겪었다. 그의 몰락과 함께 매카시즘도 자취를 감췄다.
사라졌던 매카시즘이 다시 소환됐다. 불러낸 곳은 중국이다.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18일 미국 등 여러 나라의 ‘화웨이(華爲) 보이콧’을 “하이테크계의 매카시즘”이라고 비판했다. 환구시보는 “기술과 시장에 매진하는 하이테크 기술회사인 화웨이를 미국이 강제로 정치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화웨이는 세계 1위의 통신 장비 회사다.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에서 앞서가고 있다. 이 회사를 바라보는 서구의 눈길은 곱지 않다. 화웨이의 설립자 런정페이(任正非) 최고경영자(CEO)는 인민해방군 출신이다. 화웨이의 성장이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으로 가능했다는 시각도 많다.
미국은 화웨이를 중국 공산당의 정보 수집 기구로 여긴다. 화웨이 장비에 도청과 정보 유출을 가능하게 하는 ‘백도어(backdoor)’가 숨겨져 있다는 의혹도 품고 있다. 중국의 사이버 스파이 활동에 화웨이 장비가 악용될까 우려한다.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첩보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도 지난해 7월 화웨이 견제 필요성에 합의했다고 알려졌다. 독일과 영국도 화웨이 장비 도입을 꺼리고 있다. 지난 13일 폴란드에서 화웨이 직원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영향이다.
5G 이동통신 상용화를 둘러싼 각국의 주도권 경쟁은 치열하다. 5G의 표준이 되려는 화웨이의 행보는 ‘중국의 야심’과 동의어다. 미국과 중국의 ‘신(新) 냉전시대’에 다시 부는 ‘하이테크 매카시즘’이 중국의 주장대로 서구의 마녀사냥인가. 아니면 중국의 스파이 행위와 기술 탈취에 대한 합리적 의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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