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Floyd and the ‘Collapse of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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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플로이드와 ‘제국의 몰락’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살해사건과 이를 계기로 미국과 세계 각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항의시위를 보면서 나는 ‘제국의 몰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백인 경찰관들이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흑인의 목을 눌러 잔혹하게 살해한 이 사건은 어떻게 보면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또 하나의 에피소드로 간주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과 혐오로 살해되고 희생된 소수계 시민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지금 미국시민들뿐 아니라 세계인을 경악하게 하는 것은 미국 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것이 이 사건을 이전의 인종차별 사건들과 확연히 구분짓는다고 생각한다. 아주 짧은 립서비스를 제외하면 정상국가의 지도자가 통상 취하는 최소한의 정치에티켓도 없었다. 사망자와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짐하면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다든지 하는 정치적 제스처들 말이다. 트럼프는 시위가 발생하자마자 즉시 “약탈이 시작되면 발포도 시작될 것”이라는 트윗을 날렸다. 주지사들에게 군대를 동원할 것을 명령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연방군을 동원하겠다는 으름장까지 놓은 후 한 교회에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성경책을 들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정치쇼까지 연출하였다.

수도인 워싱턴에서는 전투헬기가 시위대의 머리 위를 맴돌고, 켄터키주 루이빌에서는 경찰의 발포로 시위대 한 명이 숨졌다. 트럼프와 미국 극우세력들이 평화시위를 폭력시위로 유도하고, 인종 간 갈등과 분열을 획책하려고 시위대와 미국시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자극하고 있다는 혐의도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제국의 탄생과 성장의 시기는 구성원들 간 통합의 시대이다. 반면 제국 몰락의 시기는 분열과 갈등의 시기이다. 제국의 부가 늘어나면서 지배계급들에게로 더 많은 부가 집중되고 분배적 부정의가 횡행하며 계층 간 갈등이 격화한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피터 터친은 제국의 태동과 발전, 몰락을 설명하는 핵심개념으로 ‘아사비야’를 언급한 바 있다. 아사비야는 14세기 아랍의 사상가인 이븐할둔이 사용한 개념인데 동질감, 연대의식, 집단 결속력, 사회적 자본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아사비야는 제국 내 구성원들 간 협력의 역량으로서 제국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지만 제국의 몰락기에는 급속히 사라진다. 제국은 인민들의 어깨 위에 건설되고, 그들의 어깨 위에서 성장하지만, 인민들이 더 이상 제국을 자신들의 어깨로 지탱하려 하지 않으면 급속히 무너진다.

미국의 금융사가인 닐 퍼거슨은 제국의 몰락은 ‘한밤의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온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옥스퍼드대학의 역사가 워드 퍼킨스도 로마 제국의 종말이 사실상 한 세대 만에 일어났다고 본다. 300여년간 당대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명 제국도 17세기 중반 ‘오랑캐’ 청이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멸망했다. 1945년까지만 해도 미·소와 세계 분할을 논의하던 대영제국은 그로부터 20년 뒤 존재감조차 없어졌다.

성장하는 제국들은 다원주의적이고 관용적이다. 반면 쇠락하는 제국들은 불관용과 혐오로 얼룩져 있었다. 중세 종교박해가 심하던 시절에 네덜란드는 인종과 종교에 대한 포용력으로 기술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도록 만들어 소국임에도 유럽 최강의 부국이 될 수 있었다. 반면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후 종교적 불관용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급속히 쇠락하기 시작하였다.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아랑곳하지 않는 트럼프와 공화당의 잔혹함과, 모든 책임을 국내외의 희생양들에게 돌리는 뻔뻔스러움은 제국 몰락의 명백한 조짐이다. 몰락하는 제국은 발흥하는 신흥제국과 갈등하며 주변국들에 줄서기를 강요한다.

미 제국의 몰락은 신자유주의 질서의 몰락을 동반할 것이다. 베트남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그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세계 금융위기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미 제국의 엘리트들과 금융자본가들의 오만, 편견과 위험한 투기가 미국과 세계를 얼마나 나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미 제국이 몰락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체제전환을 이뤄내야 할 것인가? 지금은 거대한 전환의 국면이다.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전환하려는 도약에는 이 거대한 전환적 국면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기존 경기부양책의 재탕이 아닌 근본적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제도적 전환과 발전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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