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Normal: The 50 States of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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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떻게 미국이 코로나19에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져?”

미국 정치를 전공한 필자가 지난해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3억3천만명이 사는 미국에서 코로나19 공식 확진자는 2800만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52만명에 달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전세계 사망자 5명 중 1명은 미국인인 셈이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이지만, 지난해 내내 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보건당국의 권고를 무시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 주요 관광지를 폐쇄하지 않고 계속 개방하기로 결정한 주지사와 같이 부정적인 뉴스가 대부분이었다.

백신과 함께 상황은 반전되는 듯했다. 3월5일 기준으로 백신을 한 차례 이상 맞은 미국인은 미국 전체 인구의 16%를 넘었다.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와중에 지난 2일 텍사스 주지사가 돌연 모든 방역 수칙을 사실상 다 폐기해버렸다. 오는 10일부터 텍사스주에서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고, 식당이나 체육시설 등 대부분 사업장에 적용되던 최대 수용 인원 규제도 사라진다. “텍사스 경제를 100% 재개하기 위해서”다. 텍사스의 코로나19 상황이 급격히 좋아진 걸까? 수치로 보면 그렇지 않다. 텍사스에서만 코로나19로 이미 4만5천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지금도 하루 평균 7천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온다. 백신을 한 차례 이상 접종한 사람의 비율도 미국 50개 주 가운데 48위에 그친다.

공화당인 그레그 애벗 주지사가 내린 이 결정을 보면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이 실망스러웠던 중요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바로 미국이 연방제 국가라서 그렇다. 50개 주가 연방을 이루고 있는 미국에서 주정부의 권한은 막강하다. 주마다 지리적, 경제적 상황이 크게 달랐기 때문에 미국은 주정부의 자율성과 판단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흔히 세계 최고의 권력자로 불리는 미국 대통령도 주정부의 결정과 정책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방정부의 법과 지침보다 주의 법과 주지사, 주의회의 결정이 우선시되는 일도 많다. 코로나19와 같이 모든 주의 협력과 일관된 정책이 필요한 상황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한 날 곧바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규정을 행정명령으로 내렸다. 그러나 이 규정도 연방정부 공무원들과 연방정부가 소유한 건물, 시설에 들어오는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주정부의 마스크 착용에 관한 정책이 다르면 연방정부 소유가 아닌 곳에서는 주정부의 지침이 우선이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는 중앙정부 정책이 서울부터 제주까지 일사천리로 적용되는 한국과는 크게 다르다.

바이든 대통령은 텍사스와 미시시피 주지사의 발표가 있자마자 이 결정들을 “네안데르탈인 같은 생각”이라고 맹비난했다. 과학적으로 사고하지 않은 원시적 결정이란 말이었다. 바이든은 과학에 기반을 둔 보건 전문가들의 조언을 주정부가 따르는 것이 미국이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필수 조건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연방정부가 텍사스주의 결정을 되돌릴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다.

미국을 경험하기 전에는 “어디서 왔느냐”라는 질문에 미국인들이 국적인 미국을 대지 않고 “텍사스”나 “캘리포니아”처럼 출신 주를 언급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살아보니, 50개 주가 “딴 나라”처럼 정말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주정부는 대통령과 연방정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권한을 지녔고, 어느 주 출신인지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오히려 이렇게 다른 50개 주가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미국은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기로에 서 있다. 미국이 참전한 그 어떤 전쟁보다도 많은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지만, 전시 체제는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50개의 서로 다른 미국이지만,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만큼은 연방정부의 방침에 일사불란하게 따라야만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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