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좌우 기성 엘리트들을 부정하고, 보수적인 사회문화 가치를 옹호하는 우파포퓰리즘이 동력인 트럼프주의가 한국에 언제, 어떻게 출현할지는 관심사였다. 이제 트럼프가 한국을 본격적으로 찾아왔다. 그와는 나이와 스타일이 전혀 다른 인물을 통해서다. 이준석이다.
애초 트럼프는 그와 나이와 언행이 비슷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를 통해 빙의할 것으로 안팎에서는 추측됐다. 기성 좌우 엘리트들을 폄하하고, 보수적인 우파 가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마초적이고 거침없는 언행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홍준표와는 전혀 스타일이 상반되는 이준석에 빙의해, 그를 국민의힘 당대표로까지 부상시켰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은 공화당 지지층의 반민주당 정서가 저학력 백인 중하류층의 불만과 결합한 것이다. 이준석 당대표 당선 역시 국민의힘 지지층의 반민주당 정서, 즉 정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절박한 욕구가 2030 젊은층의 불만과 결합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버락 오바마의 집권에 대한 반발이 배경이고, 한국에서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이 배경이다.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정권에 가졌던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것이 공통적이다.
미국 공화당이나 한국 국민의힘 지지층의 정권 회복 욕구는 저학력 백인 중하류층이나 2030 젊은층이 기존의 좌우 엘리트나 기성세대에 가진 불만을 전적으로 수용했다. 그 결과는 기성 정치인이 아닌 새로운 인물에 대한 선택이다. 하지만 대중은 새로움을 원하면서도, 익숙함도 원한다. 그 결과가 대중 매체에 연예인처럼 노출된 트럼프와 이준석이다.‘새로운 익숙함’이라는 필요조건에서 홍준표는 애초부터 탈락의 대상이었다. 이에 더해 홍준표는 또 다른 필요조건도 결했다. 즉, 트럼프는 미국에서 대중이 가장 선망하는 백만장자이고, 이준석은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갈망하는 ‘좋은 스펙’을 완벽하게 갖췄다.
거친 말을 하고, 비합리적 주장을 하는 트럼프와 세련된 말을 하고 기존의 비합리적 주장을 배격하는 이준석은 스타일에서 다르다. 하지만 그들의 언행이 전하는 콘텐츠가 다른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모두 ‘역차별’을 지적하며, ‘공정한 경쟁’을 주장한다. 기존의 다수나 주류가 소수와 비주류들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저학력 백인 중하류층들은 소수인종과 이민자들 때문에 자신들의 정당한 몫이 줄어들었다고 분노한다. 이준석을 지지하는 2030세대, 특히 젊은 남성들은 여성이나 약자 우대 정책들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백인 민족주의 세력들이 도발한 인종주의 폭동의 책임을 진보세력이나 유색인종에게도 돌리는 인종주의적 선동을 지속해왔다. 내각이나 백악관을 백인, 특히 백인 장년 남성으로 채워놓고는, 실력에 따른 공정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준석은 자신의 저서 제목을 <공정한 경쟁>이라고 명명하고, 여성이나 청년, 약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은 정글”이고, “정글의 법칙, 약육강식의 원리…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본다.
트럼프와 이준석,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의 모순은 거기에서 나온다. 트럼프와 이준석이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이 공정한 경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그 논리의 승자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현실에서 뒤처지고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트럼프와 이준석을 지지하고 있다. 기성 체제의 최대 수혜자이자 승자인 트럼프와 이준석이 그 체제에서 낙오되고 불만을 품은 사람들의 대변자가 되는 모순된 현실이다.
트럼프와 이준석에 대한 환호는 진보의 정체성 정치도 한몫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진보세력에서는 68혁명 이후 사회 대중의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운동이 동력을 찾지 못하자, 소수와 약자의 정체성에 기댄 동원 정치의 비중이 커졌다. 양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인종·젠더·종교 등 민감한 정체성 문제를 두고 첨예한 문화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진보운동의 동력이 되어야 할 다수 집단의 중하류층들이 보수화됐다. 트럼프가 출연한 배경의 하나다.
트럼프는 이제 이준석을 통해 한국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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