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민주당이 연방 상·하원 모두에서 승리한 올해 초, 미국은 금방이라도 진보의 나라로 탈바꿈할 듯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 경기부양법안을 제외한 모든 민주당 정책들이 공화당의 반대로 상원에서 계류 중이다. 전부 필리버스터 때문이다.
한국 국회에서 ‘무제한 토론’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 연방상원에서 통용되는 필리버스터는 안건의 투표를 방해하는 모든 종류의 의사진행방해 행위를 말한다. 의사규칙상으로 모든 상원의원들은 주제와 시간의 제약 없이 본회의 연단에서 발언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반대 토론을 하기도 하지만, 그냥 시간을 때우기 위해 유권자들과 주고받았던 대화를 소개하거나 성경 또는 요리책을 읽기도 한다. 1957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스트롬 서먼드 의원의 24시간 18분이 가장 길었던 기록이다. 또, 아무런 의미도 없고 과반수 찬성도 힘든 수정안을 제안하기도 한다. 가끔은 회의 도중에 의사정족수를 체크하자고 한다든지 정회를 요구하기도 하고, 의회 회기 중단이나 의회 해산 요구도 있었다. 모두 투표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허비하기 위한 꼼수이다.
소수당이 작정하고 의사진행을 방해하기 시작하면 며칠 넘게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기 위한 규칙인 ‘클로처(cloture)’가 사용된다. 100명의 상원의원 중 60명이 찬성하면, 본회의에서의 토론이 1인당 1시간씩 총 30시간으로 제한되고 수정안 제출도 극히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 원래는 필리버스터가 너무 심한 경우에 사용했었지만, 최근에는 필리버스터가 예상되는 안건을 상정하기도 전에 먼저 ‘클로처’ 투표를 해서 의사진행 방해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연평균 2.8건의 ‘클로처’ 투표가 있었지만, 2000년대에는 연평균 47.7회, 2010년대에는 연평균 102.4회로 급격히 늘었다. 당시 상원 소수당이던 공화당이 전략적이고 조직적으로 필리버스터를 악용했기 때문인데, 민주당도 소수당이 되면 그 전략을 답습했다. 이 때문에 이제 상원에서는 법안 통과를 위해서 ‘클로처’의 통과가 필수코스가 되어 버렸다. 법안 자체를 통과시키려면 단순 과반수만 있으면 되지만, 법안에 대한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60명의 찬성이 필요한 것이다.
제도의 원래 의미가 크게 바뀌면서 개혁에 대한 요구도 생겼다. 크게 두 가지 주장이 있다. 첫째, ‘클로처’ 통과를 위한 의원수를 60명에서 현저히 낮추자는 주장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상원 다수당이 60석 이상을 차지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현재의 기준은 너무 높다는 것이 이유다. 사실 1917년 처음 ‘클로처’가 도입되었을 때 67명이던 것을 1975년 60명으로 낮춘 선례가 있다. 또한, 2013년과 2017년 두 번에 걸쳐서 대통령이 지명한 인사에 대한 임명동의안은 50명의 찬성으로 ‘클로처’를 통과시킬 수 있게 바꾼 일도 있다.
둘째, 필리버스터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안건의 종류나 범위를 확대하자는 주장이다. 현재 세입과 세출의 전체 규모를 정하는 예산안과 구체적인 정책별로 금액을 조정하는 예산조정안에 대해서는 토론의 시간과 내용을 매우 제한하고 있어서 ‘클로처’ 제도가 필요 없다. 공화당의 세금감면안이나 민주당의 의료보험개혁안이 이 방식으로 필리버스터를 피했다. 다만, 1년에 사용할 수 있는 횟수의 제한이 있어서 이를 좀 더 유연하게 바꾸자는 요구이다.
정치가 양극화되면서 많은 제도가 원래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토론을 충분히 하게 하고 반대진영의 의사를 강하게 알릴 수 있는 필리버스터도 이제 양극화의 무기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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