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매컨지에 있는 대형 트럭공장 ‘맥(Mack)트럭 리하이 밸리’를 방문했다.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미국산 구매)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공장 노동자들을 향해 연설하면서 이렇게 약속했다.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현실로 만들 것이다. 이를 통해 앞으로 미국 경제를 노동자계급을 위한 방향으로 재건하겠다.”
대통령의 트럭공장 방문에 발 맞춰 이날 백악관은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대폭 강화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미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품의 기준을 높이고, 중요 물품에 대한 미국내 공급망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는 부품의 55%가 미국산이면 연방정부의 조달 대상에 포함되지만 이 기준을 60%로 상향 조정했다. 이후 2024년에는 65%, 2029년에는 75%로 단계적으로 올리기로 했다. 즉 2029년에는 75%의 미국산 부품을 사용해야 미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입찰 시 미국산 제품에 제공하는 통상 6%의 가격 특혜(price preference) 제도를 중요 품목에 한해 더 강화해 미국 내 공급망의 개발과 확장을 지원하기로 했다. 중요 품목에 대한 보고 요건도 신설했다. 미국 제조업과 고용을 지키겠다는 정책에 차근차근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백악관은 “이번 조치가 미국 경제 안보에 필요한 물품의 자국 생산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산 비중 증대는 해외기업의 연방정부 조달시장 접근 기회가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기업들의 대미수출은 당연히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번 발표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25일 ‘바이 아메리칸’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바이 아메리칸’은 연간 6000억달러(약 690조원)가 넘는 연방정부의 제품 및 서비스 조달 시장에서 미국산 비중을 확대하려는 정책이다. 어마어마한 연방 조달예산이 ‘메이드 인 USA’ 제품과 서비스에 집중 투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바이 아메리칸’은 제조업의 국내 회귀를 목표했던 오바마 정권과 제조업 중흥을 내건 트럼프 정권의 정책을 합쳐놓은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여기에는 국내 정치적 이유가 가장 크다. 민주당은 전통적 지지 기반이었던 노동자 계층을 지난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에게 빼앗겼다. 결국 정권을 공화당에게 넘겨주었다.
따라서 지난해 대선에선 민주당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되찾기 위해 총력을 쏟았다. 대대적인 제조업 일자리 창출을 내걸었고 국내 생산시설들을 더 좋은 상태로 재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전략은 성공해 공화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했다. 내년에 치러지는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도 제조업 지원 정책은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바이 아메리칸’ 정책에는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도 담겨있다. 바이든 정권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배터리, 원료의약품, 희토류 등 중요 품목에 대한 미국내 공급망을 강화하는데 힘을 모으고 있다. 중국의 굴기를 막는데 있어 민주· 공화 양당은 똘똘 뭉쳐 있다.
나아가 바이든 정권은 동맹국에 대해서도 이 전략에 협력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인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동맹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압박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는 앞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투자가 줄어 한국에서 질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 우려가 크다. 동시에 미국산 비중 증대는 한국기업들의 미국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권이 등장했지만 미국의 ‘국산품 애용’ 정책은 트럼프 정권 시절보다 더 강화되는 분위기다. 우리 기업에겐 상당한 부담이 예상된다. 바이든 식 보호주의 통상전략에 질질 끌려다닌다면 우리의 국익만 훼손될 뿐이다.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기회를 최대화하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지혜를 짜내야할 것이다. 새로운 차원의 대응 전략 구축을 통해 ‘바이 아메리칸’을 돌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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