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merican War that Ended in Disaster

<--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최후는 처참한 재앙이다. 미국이 20년간 100조원을 투자하고서도 민주주의 나라와, 군대 같지도 않은 탈레반을 방어할 수 있는 군대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시나리오 없는 전략으로 미국의 국익만 내세우면서 철수한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은 국내와 세계 여론의 반대에 크게 부딪치고 있다. 미국 하나만 놓고 보면 국익이란 말과 “우리 아들과 딸들을 언제까지 희생만 시킬 것인가?”란 말에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바이든은 하나만 볼 뿐 세계의 이익이 미국의 이익이란 것을 못 보고 있다. 바이든의 말이 옳으면서도 비판을 받는 것은 인간 생명에 재앙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익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탈레반 폭력세력에 던져버린 셈이다. 모든 생명은 나의 생명처럼 소중함을 바이든은 외면했다.

미국은 1, 2차 세계대전을 제외하고는 전쟁의 끝을 실패로 장식했다. 모택동(마오쩌둥)과 장개석(장제스)이 싸울 때 장개석 군대에 무기를 지원했던 미국은 모택동에게 무기를 팔아먹는 부패한 군대를 몰랐다. 한국 6·25전쟁에서 맥아더 장군은 전쟁을 종식하려 했으나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그를 폐했다. 월남전에서도 무수한 폭탄을 퍼붓고서도 수치스러운 전쟁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아프간전쟁의 최후를 보면서 지금까지의 전쟁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전장의 사회적·문화적·종교적 특성과 도덕적 해이를 파악하지 못했고, 둘째, 미국의 정치적 계산과 국익만 생각하며 졸속 철수의 재앙을 예측하지 못했고, 셋째, 자국의 이익과 세계의 이익이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숙고하지 못했다. 세계는 서로 분리된 나라의 구성이 아니고 연결된 공동체이다.

세계에는 세계윤리가 필요하다. 개인에게 개인윤리가 있듯이 세계에는 글로벌 윤리가 있다. 오늘날 지구환경의 위기는 한 나라의 위기가 아니고 세계의 위기이다. 한 나라가 탄소를 과다배출했을 때 전세계의 위기가 된다. 지금 코로나로 전세계가 고통을 주고받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 나라만 코로나를 방어했다고 해서 방어가 되는 게 아니다. 너의 문제는 나의 문제이고 나의 문제는 너의 문제가 된다.

미국은 큰 나라로 태어났다. 나라이기보다도 세계의 축소판이다.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것은 유럽과 세계인이 함께 모여서 협력한 덕분이다. 미국이 부강한 것은 세계 모두의 덕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세계의 문제를 자국의 문제로 생각하고 경찰 역할―수준과 방식을 두고선 논쟁이 있을 수 있다―을 해야 하며, 세계에 참여하는 것은 곧 자국의 이익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결국 깊은 생각 없이 군을 철수한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난민이라는 과제를 만들고 골치를 앓으면서 전세계 동맹국들에 짐을 나누려고 고민 중이다. 아프간 난민은 이슬람 율법주의의 종교적 배경, 정착과 생활 터전 제공 등 문제를 안고 있다. 일시적 혹은 항구적 정착을 놓고 고민해야 하며, 언젠가는 아프간으로 돌아가는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혹은 지구촌 여유 공간에 이스라엘과 같은 모델을 적용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한국 정부도 이 점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끝으로 미국의 국방부와 전략가들은 미국의 세계전쟁사를 재고찰하고 세계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한 전략을 재편해야 한다. 탈레반을 변화시키든지 아니면 소멸시켜야 한다. 하다가 안 되면 그만이란 식이 미국의 이미지가 아니길 바란다.

About this publi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