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이달부터 ‘자산 매입 축소’(테이퍼링)를 시작한다고 3일(현지시각) 발표했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 대유행 직후 단행한 양적완화 정책 기조를 전환하는 것으로, 20개월 만에 통화정책 정상화의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경기가 되살아나고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는 데 대한 대응 조치다. 그러나 연준은 시장에서 우려했던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주목되는 점은 크게 두가지였다. 첫째는 테이퍼링 속도다. 연준은 양적완화 규모를 매달 1200억달러(약 143조원)에서 11월과 12월에는 150억달러(약 18조원)씩 축소하기로 했다. 금융시장에서 예견한 수준이다. 내년 1월 이후 축소 규모는 그때 상황을 반영해 유연하게 결정하기로 했다. 둘째는 물가 상승에 대한 연준의 시각이다. 이는 연준의 금리 인상 시점과 직결된 사안이다. 연준의 표현이 미묘하게 달라지긴 했지만, 큰 틀에서 물가 상승이 “일시적”일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시기가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내년 2~3분기에는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리 인상과 관련해서는 “(테이퍼링과 다른) 별도의 한층 엄격한 조건이 만족돼야 한다”며 “우리는 인내심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혀, 서둘러 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연준의 결정은 달러 유동성의 급격한 축소 우려를 덜어줬다. 이를 반영해 미국 증시는 4거래일 연속 상승을 이어갔고, 국채 금리는 소폭 반등하는 데 그쳤다. 다만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이 연준의 예상보다 더 길어진다면 물가 상승 현상이 장기화할 수 있다. 세계의 중앙은행 격인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달러가 미국으로 회귀하기 시작하며, 그 여파로 신흥국은 환율이 오르고 위험자산 가격이 떨어지는 후폭풍에 직면하게 된다.
연준의 이번 결정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지난 8월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인 연 0.5%에서 0.75%로 올린 뒤 10월엔 동결했으며, 이달 25일 올해 마지막 기준금리 결정 회의를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도 경기 회복세와 물가 상승 압력은 미국과 같지만, ‘금융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에선 상황이 다르다. 가계부채 급증과 집값 폭등 등 금융 불균형 문제를 방치하면 경제 전체에 뇌관이 될 수 있다. 금통위의 고민이 연준보다 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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