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Koreans Criticize the US for the Taft-Katsura Agre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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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칼럼]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이 욕먹는 이유

국익을 숭고한 가치로만 포장할 경우, 분쟁의 위험성이 커지고 타협 불가능으로 치달아 재앙이 된다. 16일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첫 화상 회담에서 대만 문제 등을 놓고 서로에게 금지선은 무엇인지라도 확인한다면 큰 수확이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을 접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을 접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의길ㅣ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방한한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을 만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에 일조했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일부 평자들은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우리가 무능하고 현실을 몰랐기 때문인데, 미국 책임으로 돌렸다고 이 후보를 비판한다. 원론적으로 당연한 얘기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조폭에게 두들겨 맞았는데 힘이 약한 당사자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한국에서는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를 최종적으로 확인한 조약이라고 역사 교육에서 가르쳐 왔고, 나 역시 그렇게 배웠다.

1905년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미국 전쟁부 장관과 가쓰라 다오 일본 총리의 ‘밀약’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를 미국이 용인했다기보다는, 필리핀이 미국의 영향권임을 일본이 확인한 데 방점을 둬야 한다. 당시는 러-일 전쟁의 승패가 이미 결정돼, 한반도가 일본의 영향권에 들어간 게 객관적 현실이었다. 미국이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필리핀까지 영향권을 확장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은 것이 이 밀약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양국 고위 인사의 비공식 양해 사항일 뿐이다.

한반도 식민 지배의 책임을 일본 외에서 굳이 찾는다면 당시 패권국가였던 영국이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던 영국은 극동에서 군사력 전개가 힘에 부치자 ‘영예로운 고립’ 외교정책까지 포기하며 일본과 동맹을 맺었다. 러-일 전쟁에서 영국은 일본을 직간접적으로 후원하는 배후였다. 조선이 1910년에 뒤늦게 신흥국 일본에 의해 식민화된 것도 영국과 관련이 있다. 당시 영국은 조선이 청나라의 영향권에 있다고 봤고, 조선의 시장 가치를 높이 보지 않았다. 현상 유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봤는데, 러시아의 한반도 진출이 활발해지자 일본을 가지고 봉쇄한 것이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당시 동아시아 정세를 규정하는 주요 변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를 중요시하고 미국에 책임을 묻는 것은 미국에 대한 우리의 기대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모호한 미국의 외교정책 때문이다.

미국은 유럽 열강의 전통적인 ‘세력 균형 현실주의’를 폄하해 왔다. 자신들의 아메리카 대륙 지배를 ‘문명화를 위한 예정된 운명’이라고 받아들였다. 대외정책에서도 직접적인 식민 지배를 반대하고, 자유·인권·독립의 이상주의 노선을 천명했다. 본토에 많은 자원과 팽창하는 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유럽 열강의 나눠먹기를 견제하는 문호개방정책이나, 1차 세계대전 뒤 민족자결주의 등이 대표적인 이상주의 외교 노선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이 패권국가로 등극하고, 이를 위협하는 소련 등이 등장했다. 가치를 추구하는 이상주의 노선은 국가 간 힘의 우위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고 국익 우선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와 갈등을 보였다. 문제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착종이다. 자신의 국익을 숭고한 가치로만 포장할 경우 분쟁의 위험성이 커지고 타협 불가능으로 치달아 재앙이 된다. 베트남전, 이라크전쟁, 아프간 전쟁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 미-중 대결 역시 그런 양상이다. 강대국 사이의 대결은 불가피하다는 공격적 현실주의 학자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최근 <포린 어페어스>에 ‘불가피한 경쟁’이라는 기고에서 과거 미국 행정부들이 관여 정책으로 중국의 부상을 허용해 놓고는 여전히 추상적인 가치를 명분으로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그는 “상대방의 금지선을 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서로가 이해하는 것이 전쟁 가능성을 줄일 것”이라며 대외정책에서 위선을 벗어던지라고 주장했다.

싱크탱크 ‘뉴 아메리카’의 대표 앤마리 슬로터도 <뉴욕 타임스> 기고 ‘바이든 독트린에 대해 솔직해질 시간’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현실주의자, 자유주의 국제주의자, 인권운동가 등 모두의 기호를 만족시키려다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제 미국의 대외정책은 20세기의 ‘국가 중심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환경과 불평등 등 ‘사람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진화해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한 미-중 간의 협력을 촉구했다.

미어샤이머는 현실주의에 바탕한 대결을, 슬로터는 이상주의에 바탕한 협력을 촉구한다. 현실적 이해관계를 솔직하게 설정하고 이상주의적 가치로 포장해 호도해서는 안 된다는 공통점은 있다. 16일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화상으로나마 처음으로 회담을 한다. 대만 문제 등에서 서로에게 금지선은 무엇인지라도 확인한다면 큰 수확이겠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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