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ragic Prophecy and Putin’s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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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케넌은 미국의 전설적 외교관으로 러시아에 관한 최고 권위자였다. 1947년 <포린 어페어스>에 엑스(X)라는 필명으로 기고한 ‘소련 행동의 근원’이라는 글에서 소련에 대한 봉쇄의 필요성을 역설해 ‘냉전의 아버지’로도 불렸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 압박을 다루면서 1998년 미국 상원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유럽 확장을 비준했을 때 그와 통화한 내용을 소개했다. 케넌은 “새로운 냉전의 시작인 것 같다”, “비극적 실수 같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의 권좌에 오르기 1년여 전이었다.

그로부터 24년이 흘러 비극은 우크라이나에서 현실화됐다. 러시아의 행동은 위협을 주고받되 실제 전쟁으로는 치닫지 않는 냉전이라기보다는 열전의 모습으로 유럽을 일순간에 충격에 빠트렸다. 핵전쟁 위협까지 서슴지 않는 푸틴은 유럽인들 의식 속에 잠재한 러시아에 대한 공포를 극적으로 되살렸다. 근대 이래 러시아 주변 약소국들은 러시아가 흥기하면 지도에서 사라지고 러시아가 쇠퇴하면 재등장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주권국에 대한 노골적 침략과 인도주의적 재앙의 책임은 당연히 푸틴과 러시아에 있다. 하지만 사태의 근원을 살피고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러시아라는 거대 국가를 완전히 무릎 꿇릴 수 있다는 자신감은 정치적 선전과 동원의 지렛대는 될 수 있을지언정 냉정한 접근법은 아니다. 미국이 직접 충돌을 피한다는 사실 자체가 러시아를 억제하는 수단의 근본적 한계를 말해준다.

푸틴에게는 그것을 사악하다고 볼지 말지를 떠나 행동 동기가 있다. 러시아의 전략적 사고는 냉전 이래, 어떤 면에서는 훨씬 전부터 확고한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2차 대전이 끝을 향해 가던 1945년 2월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이오시프 스탈린을 만난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독일과의 전쟁을 시작한 것은 폴란드 때문이었다며 “자유롭고 독립된 폴란드”를 요구했다. 스탈린은 “폴란드는 러시아를 공격하기 위한 회랑이었다”, “지난 30년간 독일은 이 회랑을 두번이나 통과했다”며 요지부동이었다.

푸틴은 스탈린 이후 가장 강력한 러시아 지도자다. 나토의 성급한 동진은 스탈린의 지정학적 인식을 계승한 푸틴의 복수심과 ‘포위 강박’으로 이어졌다. 소련 붕괴를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으로 보는 푸틴은 미국이 너무 나갔고 러시아는 배신당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권력욕까지 결합해 포성이 울리게 된 것이다. 이번에도 이웃의 약한 나라가 대상이다. 대전 말기의 스탈린처럼 푸틴도 강한 고집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나토의 확장은 러시아를 위협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미국의 또 하나의 실수는 러시아의 ‘저력’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미국 국제정치학계에서는 러시아가 에너지 수출 붐으로 반짝 특수를 누릴 수는 있어도 중장기적으로는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과 인구 감소로 한계가 분명하다는 인식이 퍼졌다. 중국에 집중하자는 움직임의 저변에도 이런 판단이 깔려 있었다. 이런 전망이 나중에 들어맞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푸틴의 강력한 전쟁 의지가 압도하고 있다.

유럽에서 양극 시대가 본격적으로 부활할지, 아니면 이 전쟁이 아프가니스탄전쟁처럼 러시아에 부메랑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분명한 것은 사생결단으로 계속 가다간 더 큰 대결만 예정할 뿐이라는 점이다. 미국 등은 푸틴에게 어디까지 퇴로를 열어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압박을 목적이 아니라 타협의 촉진 수단으로 쓰는 지혜를 서로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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