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비전 제시와 솔선수범을 리더십의 중요한 요소로 여기는 것 같다. 그는 2020년 11월7일 대선 승리를 선언하는 연설에서 “나는 우리 미국이 지구의 등대라고 믿는다”면서 “우리는 힘의 본보기가 아니라 본보기의 힘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본보기의 힘(power of example)’은 힘을 앞세워 남이 따르도록 강압하기보다 남보다 앞장서서 행동함으로써 남들이 스스로 따르게 하는 솔선수범의 다른 표현이다. 이후로도 그는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 재건을 언급할 때마다 본보기의 힘을 입버릇처럼 말했다.
기후변화 대응은 바이든 대통령이 생각하는 솔선수범을 통한 미국의 리더십 복원 계획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취임 이후 첫 조치로 파리기후변화협약 복귀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은 그만큼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2035년까지 미국의 전력발전 부문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탄소를 배출량만큼 흡수함으로써 실질적인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드는 ‘탄소중립’ 달성 시점은 2050년으로 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무대를 통해 이런 목표를 국제사회에 천명하면서 각국의 분발을 촉구했다. 파리기후협약 탈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기후변화에 관해 태만을 넘어 역행했던 전임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의 기후변화 대응 리더십 복원 계획이 미국 내에서 연달아 발목이 잡혔다. 미 연방대법원은 연방환경청(EPA)이 전국적으로 석탄발전소의 탄소 배출량을 제한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연방의회가 새로 입법하지 않는 한 각 주의 권한에 속한다는 것이다. 전국의 석탄발전소에 대해 탄소 배출 규제를 시행하려던 계획이 무산되면서 2035년까지 발전 부문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는 타격을 받게 됐다.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뒷받침할 법안도 좌초 직전이다. 여당인 민주당 내 ‘야당’ 소리를 듣는 조 맨친 상원의원이 신재생에너지 생산 확대를 위한 3000억달러 규모의 예산이 담긴 법안에 대한 반대 의지를 꺾지 않아서다. 이로써 미국 정부 역사상 단일 규모로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최대 투자는 뒤로 밀리거나 쪼그라들 위기에 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입법 무산으로 어려워진 예산 확보를 국가 비상사태 선포로 우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러다가 미국이 오는 11월 열리는 COP27 회의에 빈손으로 참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계 2위 탄소 배출국인 미국이 기후변화 대응에 본보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의 피해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 데다, 세계가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제공하는 공공재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리더십 실추는 지구적 위기에 함께 대처하기 어렵게 한다. 미국이 본보기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른바 ‘기후 악당’이 느끼는 압력도 그만큼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지율 30%대로 미국인들에게조차 인기가 낮은 미국 대통령을 향해 “힘내라”는 구호를 외치게 만드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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