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본토를 침범한 중국의 ‘정찰 풍선’을 둘러싸고 미중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이 비행체를 중국의 정찰 기구로 판단한 미 국방부는 영토 상공을 벗어나기를 기다려 4일(현지시간) 스텔스 전투기 F-22로 격추했다. 전날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 일정이 전격 연기됐다. 공교롭게 이 기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은 관심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앞서 2일 비행선 침입 사실이 보도되자 신속히 자국 것이라 인정하며 유감을 표명했던 중국 외교부는 비행선 격추에 “무력을 동원한 과잉 반응이자 엄중한 국제관례 위반”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중국은 민수용 기상관측 장비가 불가항력으로 항로를 이탈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1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중 간 조성된 유화 국면은 이번 일로 위기에 처했다. 정상들의 소통채널 복원 합의로 양국은 지난달 경제팀 수장과 기후문제 특사가 잇따라 회동했고 이달엔 블링컨 장관이 방중 기간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날 계획이었다. 양국의 해빙 분위기 속에 한반도 역시 북한이 새해 첫날 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추가 도발에 나서지 않아 모처럼 소강 상태였다.
이번 사태는 우발적이거나 사소한 마찰이라도 얼마든지 전면적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미중 관계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미 정부는 지난달 28일 비행선을 포착하고 조용히 대응해왔지만, 일단 언론에 공개되자 국민 여론과 여야를 막론한 의회의 반중 정서에 미사일 격추 영상까지 공개하며 강경 대응했다. 향후 비행선 잔해 분석 결과에 따라 사태는 더욱 악화할 수 있다.
미중 관계 변동은 한반도 정세와도 직결되는 만큼 정부는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특히 오는 8일 건군절 75주년을 계기로 북한이 무력 도발을 재개할 가능성까지 감안한 다각적 대비가 필요하다. 군사 대비 태세만큼 중요한 것은 외교적 대응이다. 당장 북핵 대응(미국), 강제동원 배상(일본), 입국자 방역(중국) 등 주요국과의 현안을 풀어야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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