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Apathy on South Korea-North Korea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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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남북관계 무관심

신보영 / 워싱턴 특파원

“증오보다 무관심이 더 무섭다.”

한때 북한이 가슴에 가장 많이 새겼던 표현일 것이다. 미국 워싱턴DC에서 평양까지 1만1056㎞. 동북아 한 귀퉁이에 붙은 인구 2500만 명의 소국(小國)인 북한에 미국은 생존을 위해서는 긍정적 방식이든 부정적 방식이든 간에 꼭 붙잡아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 미국이 1990년대 냉전 종식 이후 북한을 거들떠보지 않자 북한이 택한 방식이 핵을 개발하는 ‘불량 국가(rogue state)’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의 무관심을 잠시 극복하긴 했다. 무관심 대신 얻은 것은 증오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최근 미국은 무관심 항목에 하나를 추가했다. 8·25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합의를 계기로 급진전하고 있는 남북관계다. 미국 신문·방송들은 8·25 합의 이전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자 앞다퉈 속보로 다뤘다. 하지만 8·25 합의가 이뤄지자 정말 놀랄 정도로 관련 소식이 뚝 끊겼다. 한반도 긴장 고조 및 완화 과정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전망하는 특집기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 긴장이 고조됐을 당시 한국을 찾았던, ‘전쟁 개시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미국 NBC방송 종군기자 리처드 엥겔 특파원도 한국에 가지 않았다. 20일 북한의 연천 포격 도발, 23일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개시에 이어 25일 타결까지 워낙 기간이 짧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주요 언론의 평가를 보면 단순히 그렇게 보아 넘기기가 힘들다. NYT·WSJ는 이번에도 “북한이 익숙한 도발 각본을 고수했다”면서 북한이 ‘사과’를 한 것이 아니라 ‘유감’을 표명했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AP통신은 “남북은 위기를 완화하는 데 있어 벼랑끝전술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묘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고는 남북이 긴장 고조라는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남북관계에는 무관심했다. 언론은 물론, 미국 국무부 역시 남북관계 전망을 묻는 질문에는 “북한 행동을 봐야 한다”는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했다. 사실 워싱턴DC 조야에서 북한 문제는 거의 잊힌 존재다. 최근 남북관계 진전에도 북한 및 북핵 문제가 장밋빛일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임기 내에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남북관계 및 북핵 문제는 마치 시시포스 신화처럼 아무리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도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피로감이 극에 달해 있다.

2012년 2·29 북·미 합의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한 달여 만에 결렬된 후유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 체제에 대한 의구심까지 더해지면서 남북관계에 대한 낮은 기대가 무관심으로 표면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3일 ‘중국 인민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열병식을 참관한다. 한국의 중국 편향 우려가 워싱턴에서 더욱 짙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 동반 진전은 위험한 ‘줄타기’라는 워싱턴 조야의 시각도 강해지고 있다. 8월 31일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밝힌 중국의 대북 레버리지(지렛대) 역할론 강조만으로는 미국의 무관심을 넘은 회의적 시각을 극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10월 미국을 방문하는 박 대통령이 과연 임기가 1년4개월 남은 오바마 대통령의 귀를 붙잡을 수 있을까. 중국과의 관계 진전과는 별도로 한·미 동맹이 박근혜정부의 외교정책 근간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동시에, 남북관계에서도 미국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진전을 이뤄내야만 겨우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은 10월 16일 한·미 정상회담까지 딱 한 달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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