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은 최근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에 대해 “결국 그들이 거짓말을 했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북한 탓만 할 게 아니라 거짓말에 넘어간 미국도 반성해야 한다.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사실상 미국과 북한의 양자회담으로 진행됐다. 북한의 핵과 핵프로그램 폐기 약속을 담은 2005년 9·19공동선언과 2007년 2·13합의를 이끌어낸 주역도 미국이다. 미국이 6자회담 합의를 물샐틈없이 만들고 북한의 약속 위반을 처벌하는 강력한 제재방안을 마련했다면 북핵 사태가 이 지경으로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말로는 북한의 약속 위반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북한에 질질 끌려다녔다. 미국 여기자 석방을 위한 활동이었다고 하지만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2009년 8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났다. 지난해 12월 평양을 방문한 빌 리처드슨 당시 뉴멕시코 주지사는 구체적 내용도 없이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북의 확성기 노릇을 했다.
어제 시작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의 한중일 순방은 미국의 결의를 보여줄 기회다. 미국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양자 대화도 이어진다. 5일 미중 외교장관이 만나고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9일 중국을 방문한다. 19일에는 워싱턴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다. 미국이 중국을 설득해 양국이 공동으로 북한에 압박을 가하면 북한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한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해 핵 보유에 한발 더 다가가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말하는 ‘핵무기 없는 세상’은 휴지조각이 된다. 오바마의 주창으로 시작돼 내년 서울에서 2차 회의가 열리는 ‘핵 안보 정상회의’도 공허해진다.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면 이란을 비롯해 핵 야망을 가진 나라들은 빗장이 열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자위권 차원의 핵 개발 논의가 대두되면 동북아에서 핵 군비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중국의 선의와 북한의 자발적 변화를 기대하는 소극적 대응으로는 김정일 집단의 핵무장 의지를 꺾을 수 없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불용(不容)을 선언하고 북한에 단호하게 6자회담 합의 이행과 회담 복귀를 촉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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