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말수가 참 적다. 혼자 있길 좋아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군중 속에서도 혼자 앉아 있거나, 거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말을 시작하면 군더더기가 없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문장의 구성은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간결하고 차갑다.
기자가 97년 만에 이루어진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장에서 지켜본 그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성명서를 읽어갈 때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할 때도 그의 목소리는 톤과 강도에서 전혀 변화가 없었다. 1시간 동안 단 한번도 미소를 보이지 않았다. 회견을 마치고 돌아갈 때 뒷모습에서 `무감정 인간`이라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였다.
경제학자로서 버냉키 당시 프린스턴대 교수도 그랬다. 같은 대학에서 7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폴 크루그먼 교수와 함께 미국 내 대표적인 케인시언이었던 그는 케인시언에 대한 오류가 쏟아지고, 수많은 비판이 몰려도 단 한번도 변심하지 않았다. 1990년대 그의 일본 경제에 대한 비판이 대표적이다. 어떠한 처방도 먹히지 않아 잃어버린 10년 나락으로 향하던 일본에 `헬리곱터로 돈을 뿌려라`는 극약처방을 전했던 사람이 바로 버냉키 교수였다.
목표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려 시장이 중앙은행의 강력한 경기부양 의지를 확인토록 해야 한다는 폴 크루그먼의 주장도 그대로 수용했다. 시장의 상상을 넘어서는 완화정책만이 면역성을 키운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며 더 강한 주사를 주문했다. 나름 강력한 확장정책을 써 나가던 일본중앙은행마저 거부감을 느낄 정도였다. 1930년 대공황과 금융정책을 연구했던 그를 일각에서 극단적인 케인시언으로 분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랬던 버냉키 의장이 지금 케인시언들로부터 변절자 취급을 받는다. 폴 크루그먼이 대표적이다. 올 6월 양적완화 종료가 선언되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경기부양을 해야 할 땐데 무슨 소리냐”라고 힐난했다. 지난 8월 FOMC 회의에서 `2013년까지 제로 금리 유지`를 결정하자 `실망스럽다`고 폄하했고, 이번 잭슨홀 미팅 후에는 “그는 미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성장하든 않든 관심조차 없다”고 분노했다. 프린스턴대학 교수 당시 고집스럽고, 완고했던 경기부양론자의 모습과 일본 경제 처방을 꾸짖었던 학자로서의 소신은 사라졌다고 버냉키 의장을 비꼬기도 했다.
지난 8월 미 FOMC 회의에서 3명의 위원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이를 포함해 버냉키 의장이 취임한 이래(2005년) FOMC 회의에서 의장에 반대 의견을 낸 사례는 모두 26회에 달했다. 오바마 제1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크리스티나 로머 버클리대 교수는 “반(反)케인시언들에 둘러싸인 버냉키 의장의 분투가 눈물겹다”고 했다.
버냉키 의장을 조금만 이해하면 지금 그의 머릿속에 무엇이 담겨 있을까를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다. 다만 그가 무엇을 핑곗거리로 삼을 것인가를 맞추는 일이 난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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