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그날의 충격을 우리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2001년 9월 11일 민항기들이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 국방부 청사를 향해 돌진하는 장면을 TV 화면으로 지켜보면서 세계는 경악했다. 묵시론적 공포에 전율했다.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초현실적 상상력은 여객기를 테러의 도구로 둔갑시켰고, 90여 개국 출신 2977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참사로 영원히 역사에 남을 9·11 테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세계는 더 안전해졌는가. 또 더 살기 좋은 곳이 됐는가.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 9·11 테러 10년을 맞는 오늘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본토를 공격당한 미국의 반격은 신속하고 강력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미국은 알카에다의 근거지가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다. 대량살상무기(WMD)를 핑계로 이라크 침공을 단행, 사담 후세인 정권마저 무너뜨렸다. 알카에다 소탕을 위한 대대적 군사작전은 비(非)국가조직과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낳았다.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지난 5월 결국 사살되면서 알카에다의 세력은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응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세계를 우리 편 아니면 적(敵)의 편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논리는 이슬람권과 유럽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테러범 수사 과정에서 시민적 자유와 인권 침해 논란도 불거졌다. 경제적 자원과 군사적 역량의 과도한 투입은 자원 배분의 왜곡과 부작용을 초래했다. 7500명의 다국적군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목숨을 잃었고,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 1조2800억 달러 등 3조 달러 이상이 테러와의 전쟁에 들어갔다. 설상가상으로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의 경제적 몰락을 가속화했다. 15조 달러의 국가부채 탓에 국가신용등급은 강등됐다. 반면 중국의 힘은 급격히 커졌다. 역사는 9·11 테러를 미국이 쇠락의 길로 접어드는 분기점으로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분노는 이해하지만 좀 더 성숙하고 절제된 대응을 했더라면 미국의 시대는 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알카에다의 테러 위험은 현저히 줄었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노르웨이에서 보았듯이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테러 위험은 상존하고 있다. 미국의 추락을 세계는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리비아 사태에서 확인된 것처럼 미국은 주변적 역할로 밀려나고 있다. 그만큼 세계질서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경제 위기로 세계인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내일 거행될 10주년 추모식은 세계를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새로운 다짐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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