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옛날 신문을 뒤져 읽기도 했다. 내가 살았던 그 시절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문득 역사에 대한 경외심이 새로이 움트기도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옛날 신문을 뒤지기 위해 굳이 도서관을 찾을 이유가 없다. 검색어만 넣어도 상당한 기간의 뉴스가 검색되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날치기 통과된 때는 오래전도 아니다. 최루탄 가스로 자욱한 회의장, 의원들의 난투극이 우리 모두의 뇌리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는, 과거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바로 얼마 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여야 특히, 민주당을 설득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를 방문했다. 그때 대통령은 입법부에 이렇게 제안했다. “국회가 한·미 FTA를 비준 동의하면서 정부에 양국 정부가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를 재협상하도록 권유하면 발효 후 3개월 내에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겠다.” 대통령은 또 “책임지고 미국과 재협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여야 수뇌부와의 비공개 면담자리에서 대통령은 “야당에서는 왜 오바마 미국 대통령만 믿나, 한국 대통령을 믿어야 하는 것 아니냐. 내게 하라고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하겠다”면서 “나라를 위해 생각해 달라. 민족과 역사에 어떻게 남을지 부끄럽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고도 한다.
대통령의 국회 방문 이후 두루 알다시피, 한·미 FTA는 결국 ‘날치기’ 통과됐다. 그리고 그 발효일을 4·11총선으로부터 단 하루라도 더 떼어 놓기 위한 우리나라 통상관료들의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3월 중순이 되어서야 FTA는 발효가 되었다. 발효일은 처음부터 3월 말을 요구한 사실상 미국의 입장이 관철된 결과였다.
물론 한·미 FTA가 날치기 통과되었다고 해서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대국민 약속을 철회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할 때 발효일인 3월15일부터 3개월 뒤인 6월15일까지 한·미 FTA 특히 그중 ISD 재협상을 미국에 요구했어야 하고, 또 한·미 간에 재협상이 진행되어 발효 4개월이 지난 지금쯤엔 그 무슨 결과를 들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정치권의 누구도 이 옛날 같지도 않은 옛날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갑자기 집단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말이다. 농반 진반 이런 말을 듣곤 한다. 4·11 총선 이전과 이후 야당 또는 관련 인사에게 보고하는 정부관료들의 급이 국장에서 과장으로 바뀌었다고 말이다. 야당이 대패한 뒤 눈치볼 일 없어진 관료들의 생리가 고스란히 작동한다는 뜻일 게다. 그렇게 본다면, 총선 이후 통상관료들이 성의 있는 재협상을 추진할 리가 만무하고, 이 사정을 손금보듯 꿰뚫고 있는 미국이 이에 압박을 느낄 까닭도 없다. 그래도 만에 하나 한국이 간절히 원한다면 만나기는 하겠지만, ISD를 개정하는 것은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는 것이 미국 측의 속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이런 말이다. 대통령 이명박의 약속은 결과적으로 대국회, 대국민 사기극에 다름 아니었다. 일국 대통령의 공언이 그저 야당을 꼬드겨 국회비준을 용이케 하기 위한 꼼수였다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다. 통상관료 역시 총선 이후 야당이 대패한 정치적 상황을 악용해 마땅히 해야 할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된 데에는 야당 역시 그 역사적 책임을 모면할 길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이 언급한 약속시한이 끝났음에도 누구도 챙기지를 않았다. 집안싸움에 바람잘 날 없는 진보당 역시 마찬가지다.
꼼수, 무능 그리고 무책임 속에서 그렇게 망각의 계절이 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대통령은 그나마 임기가 하루라도 더 남아 있을 때 약속을 이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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