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경 칼럼] 지긋지긋한 전쟁놀이를 끝내는 길
[중앙일보] 입력 2016.01.13 00:49 수정 2016.01.13 14:45
어쩌다 세계지도를 펼치면 처연해진다. 우리 운명에 개입해 온 미국과 중국의 면적은 각각 한반도의 44배와 43배, 러시아는 77배다. 일본도 1.7배다. 남한만을 기준으로 하면 미국과 중국은 각각 98배와 95배, 러시아는 170배, 일본은 3.7배다. 이렇게 거인에게 둘러싸인 왜소한 나라가 둘로 나뉘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
남한은 2014년 78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사들여 세계 1위의 수입국이 됐다. 70억 달러어치는 미국에서 수입했다. 북한은 핵무기로도 성이 안 차 위력이 핵무기의 최고 100배에 달하는 수소폭탄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친다. 남북은 서로를 괴롭히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쏟아붓고 있다.
문명사의 밝은 눈으로 보면 자해(自害)다.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개국한 뒤 한민족은 931번 침략을 당했다고 한다. 식민지 노예살이의 치욕도 모자라 강대국의 손에 두 동강 나 죽기살기로 싸우고 있다. 만성이 된 증오와 적대의 스트레스는 공존을 거부하는 배타(排他)와 이기(利己)라는 독소를 뿜어내고 있다. 기구하고 가혹한 운명이다.
북한이 4차례나 저지른 핵 도발은 미국과 중국이 나서야만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두 강대국은 팔짱 끼고 서로를 탓하고만 있다. 대북 제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은 압록강 밑을 통과해 신의주로 연결되는 단둥(丹東)의 송유관을 틀어막을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다. 최상의 한·중 관계를 어지럽히는 북한의 불장난이 괘씸하지만 완충지대를 포기하고 한·미·일 3각 동맹에 홀로 맞서고 싶지 않다. 한국의 불안과 분노까지 배려할 이유도, 여유도 없다.
이 지경까지 온 데는 미국의 책임이 상당하다. 버락 오바마가 ‘전략적 인내’라는 근사한 이유로 북핵을 방치한 지난 7년간 북한은 3차례나 핵실험을 했다. 조엘 위트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원은 이대로 가면 북한이 2020년까지 100여 기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핵실험 후의 통과의례로 한반도 상공에 B-52 전략폭격기를 띄운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바마는 2008년 대통령후보 시절 “적들과도 단호하고 직접적인 대화를 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미국은 이란과 핵협상을 타결하고 쿠바와 수교했다. 그러나 유독 북한은 방치했다. 물론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은 북한에 식량 24만t을 지원한다는 2012년 2·29 북·미 합의 직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해 미국이 실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미국이 북한을 ‘의도적으로’ 방치한다고 의심한다. ‘핵을 가진 북한’의 존재가 한·미·일 3각 동맹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구실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이 반발하는 한국 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도 ‘북핵’의 존재 때문에 추진되고 있다. 북한은 1년 전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임시로 중단하면 핵실험을 임시 중단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미국은 즉각 거부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오바마를 비판하면서 “미국은 북한과 탐색적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비난하면서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거듭 주장했지만 미국은 반응하지 않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도 풍계리에서 올라오는 포연(砲煙)을 보면서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다. 미국의 엄호로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하고 위안부 문제 타결이라는 날개까지 단 일본에는 본격적인 재무장의 기회가 열린 셈이다. 김정은도 올해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잊혀졌던 ‘북핵’이 쟁점으로 떠오르는 상황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핵도 모자라 수소폭탄까지 머리에 이고 살아가야 할 우리의 현실이다. 동맹국 미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는 중국이 딴청을 부리고 있는데 우리가 대북 확성기를 튼다고 핵 보유에 대못을 박은 북한 헌법 서문이 고쳐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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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불장난을 미·중이 말장난으로 넘기지 않도록 하려면 무시할 수 없는 결기 를 보여야 한다. 강력한 제재가 이뤄지도록 국제 공조를 주도해야 한다. 하지만 제재가 파탄적 상황을 불러와선 안 된다. 어디까지나 대화와 협상을 유도하는 과정으로 작동해야 한다. 결국 북·미 대화의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남북 관계를 먼저 풀고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도 움직일 수 있다. 어렵지만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대처해야 한다.
북한도 달라져야 한다. 김정은은 후계자 시절인 2011년 4월 첫 연설에서 “더 이상 인민들 허리띠를 조여 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핵과 경제의 병진이라는 비현실적 슬로건을 내려야 한다.
우리가 힘에 부친다고 체념하면 주변의 거인들은 한반도의 고통을 방치할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전쟁놀이의 자해에서 벗어나 평화를 회복할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강대국 의존이라는 주술(呪術)에서 깨어나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하경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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