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샌더스와 역사의 큰 흐름
“샌더스 행정부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정부가 되려는 것인가?” 미국 대선의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를 며칠 앞두고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CNN 방송 진행자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게 물었다. 샌더스의 복지, 교육 공약들을 실현하려면 많은 재원이 필요하고, 정책 집행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 확대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그렇다’고 답하는 대신 맥락을 설명했다. 미국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대공황기인 1928년 이래 가장 심각한 상황에서 중산층, 노동계급 복지 강화를 위해 월가와 거대 기업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행자는 ‘예, 아니요’의 대답을 요구하며 집요하게 ‘큰 정부’란 말을 끌어내려고 했다. 샌더스는 넘어가지 않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런 게 나에 대한 비판이라면 얼마든지 하라. 내가 하려는 일은 ‘기업국가 미국’과 월가의 탐욕에 맞서고 중산층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 ‘큰 정부’는 금기어나 다름없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3권 분립과 주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식 등으로 권력집중 방지 장치를 헌법에 담아놓은 것도 이와 관계 있다. 이는 공화당 보수파뿐만 아니라 언젠가부터 민주당에서도 깊이 내면화됐다.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은 1981년 ‘정부는 문제의 해법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이다’라고 했다. 민주당 빌 클린턴은 1996년 ‘큰 정부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과 그로 인한 경제성장이 곧 복지 강화로 가는 핵심이라는 취지였다. 레이건 이래 각종 규제 완화와 자유무역 정책이 더 강화됐다. 미국 기업들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임금이 낮은 해외로 공장을 옮겼다. 1999~2011년 600만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월가의 금융산업과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산업이 붐을 이뤘지만 중산층의 몰락을 막지 못했다.
클린턴의 민주당은 레이건에게 블루칼라의 지지를 빼앗긴 이후 레이건이 만들어 놓은 세계 안에서 개혁을 했다. 시카고대 로스쿨의 브라이언 라이터 교수는 버락 오바마라고 해서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는 그런 점에서 1980년 시작된 레이건 시대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샌더스의 입장은 힐러리 클린턴 진영과 주류 언론에게 ‘급진적’이라고 비판받는다. 샌더스는 그런 비판을 받으면 늘 끌어들이는 사람이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다. 그는 한 토론회에서 아이젠하워 시대에 최상위 한계소득세율이 90%를 넘었다며 “그에 비하면 나는 사회주의 축에 끼지도 못한다”고 했다. 샌더스는 대공황기에 집권해 미국인의 사회안전망을 최우선시한 루스벨트를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다. 루스벨트의 집권기간은 1933~1945년이지만 아이젠하워, 닉슨, 포드의 공화당 정부가 그의 진보적 조세제도, 사회안전망, 규제 정책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루스벨트 시대’는 1980년까지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샌더스가 레이건 이래 36년간 계속되어온 미국 정치·경제의 문법을 바꾸려 한다는 점에서 그의 접근은 ‘급진적’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역사를 보면 사회주의 문패만 달지 않았을 뿐 그보다 더 급진적인 시대가 많았다. 게다가 최근 캘리포니아, 뉴욕주가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기로 하는 등 수요와 공급 원칙에 의한 주류 시장경제학 이론이 현실에서 계속 깨지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 주류 언론들은 샌더스의 정책이 실현 가능성이 없다며 그의 지지자들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점잖게 조언한다. 민주당 내에서는 대의원 표 계산을 고려하면 샌더스가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으므로 힐러리의 본선 대비를 위해 샌더스가 조기 승복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하지만 샌더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싸움을 접을 생각이 없다. 경선 결과에 관계없이 자신들이 역사의 큰 흐름을 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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