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11시 버지니아주 브리어우즈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트럼프 유세.
36도를 웃도는 찜통더위임에도 미처 입장하지 못한 인파가 무려 500m가량 줄을 섰다. 어림잡아 1500명. 대단한 열기였다. 한쪽에서 웅성거림이 있었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30여 명이 ‘트럼프는 파시스트’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인 것. ‘내가 테러리스트로 보이나요?’라고 쓴 팻말을 든 이슬람계 학생도 있었다. 흥미로웠던 건 이들에게 득달같이 따지러 달려간 트럼프 지지자 50여 명과의 대화.
“너희들, 힐러리 같은 거짓말쟁이를 지지하는 이유가 뭐니?” “맙소사. 그럼 트럼프가 하는 말은 정상이니?” “혹시 너희 매일 워싱턴포스트나 CNN 보고 있니?” “음, 공화당 하나 단속 못하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마.”
무릎을 쳤다. 이들의 대화 속엔 이번 대선의 핵심이 모두 담겨 있었다. ‘트럼프 대 클린턴’도 아니고 ‘공화당 대 민주당’도 아닌 ‘트럼프 대 반트럼프’의 싸움-. 좋든 싫든 트럼프가 자초한 구도다. 또 하나. 누가 더 ‘덜 거짓말쟁이인가’의 저급 경쟁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의 비유는 뇌리에 남는다. “만일 클린턴이 ‘난 저 나무를 베지 않았어’라고 말하면 그건 전동톱을 사용해 나무를 잘랐거나, 비서를 시켜 잘랐다는 이야기로 해석하면 된다. 하지만 트럼프는 방금 전 페이스북 라이브로 도끼로 나무를 벤 장면이 나왔어도 ‘난 절대 베지 않았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도긴개긴이다.
후보 못지않은 저급은 미 언론이다. 자신들 논조에 맞는 후보를 지지한다는 건 일찍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편파 보도를 대놓고 하는지 몰랐다. 교묘하지도 세련되지도 않다. CNN 앵커가 TV에 나와 트럼프 편을 드는 출연자를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고 면박을 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 이제 게임 끝나겠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의 클린턴 관련 대형 의혹이 터져도 관련 기사는 뒷전이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내 눈에조차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CNN은 ‘언론인’이라기보단 클린턴과 함께 ‘트럼프와의 전쟁’을 치르는 ‘전사’처럼 보인다.
또 하나의 충격은 버니 샌더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1%가 99%를 지배하는 사회의 종식”을 외치던 그가 경선이 끝나자마자 휴양지에 6억3000만원짜리 별장을 구입하다니. 별장 포함 집이 3채란다. 이런 사회주의자의 외침에 서민과 중산층 유권자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것인가.
미국다운 정치 문화일지 모른다. 하지만 겉과 속이 다른 후보들, 자신들의 잣대로 ‘정의’를 휘두르는 언론 권력, 정책 아닌 ‘덜 거짓말 후보’를 놓고 고민하는 유권자…, 이 모두 결코 정상은 아니다. 우리가 배울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한국 정치가 이들에 뒤처질 이유가 없다. 상반기 ‘미국 대선(경선) 관전기’에 이어 미 대선 본선의 현장을 속편으로 속속 파헤쳐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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