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 Presidential Election Review: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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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억만장자는 1950년대 유전 개발로 떼돈을 번 석유왕 장 폴 게티다. 그는 지독한 구두쇠였다.

73년 7월 이탈리아 여행 중이던 16세 손자가 마피아에게 유괴를 당했다. 몸값은 320만 달러. 현재 기준으로 단순 환산하면 36억원. 당시 돈으로 4조원 넘는 재산가 게티에겐 ‘껌값’이었다. 하지만 게티는 단번에 거절했다. “손주가 13명이나 있는데 한 명에게 그런 돈을 쓸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마피아가 손자의 한쪽 귀를 잘라 보내며 “열흘 안에 돈을 안 보내면 나머지 한쪽 귀도 보내겠다”고 협박해도 게티는 꿈쩍 안 했다. 결국 아들이 게티에게 통사정을 해 4% 이자까지 지급하는 조건으로 유산 상속분을 미리 빌려 간신히 아들을 구해냈다.

그뿐 아니다. 자신의 대저택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전화를 쓰는 걸 막기 위해 공중전화까지 설치했다. 그런 구두쇠였지만 통 큰 기부자였다. 로스앤젤레스 샌타모니카 산기슭에 307만4000㎡(93만 평)의 토지를 구입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 공공 미술관을 만들었다. 입장료도 무료로 했다.

게티 이야기를 장황하게 꺼낸 건 종반전으로 돌입한 미 대선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부자들의 선거자금 기부 때문이다.

최근 힐러리 클린턴에겐 “갑부들을 만나 선거자금 걷기 바쁘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2주 동안 22번의 기부금 마련 행사를 해 5000만 달러(약 560억원)나 거둬들였으니 그런 비판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관점을 확 바꿔 생각해보면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에게 선뜻 돈을 기부하는 부자들의 결단도 대단하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거에 돈을 넣건 빈부격차 해소, 예술·과학기술 진흥을 지원하건 이들의 기부문화는 부럽기 짝이 없다. “(대선후보 개인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환원”이라고 말하는 ‘큰손’들의 주장이 결코 변명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미 대선 종반전을 지켜보며 돋보이는 것은 명(明)보다는 암(暗)이다.

얼마 전 들른 애리조나주에서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 한 호텔에 묵은 한국인 단체 여행객들이 호텔 뷔페 식당에서 프라임 립(최상급 쇠갈비)을 썰어 달라고 했다. 그러자 백인 종업원이 “아시아인들은 그냥 로스트 비프(구운 쇠고기)나 먹어라”고 되받았다. 딴 것도 아니고 먹는 것 갖고 그랬다. 그래서 사태가 커졌다. 결국 호텔 지배인이 사과하고 수습은 됐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이번 대선으로 미 사회에 백인 대 비백인의 갈등,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심화됐는지를 보여준다.

앞으로 두 달 남은 대선전. ‘트럼프 대통령’ 못지않게 걱정되는 것은 뿌리를 깊숙이 내린 ‘트럼프 현상’이다. ‘누가 덜 비호감? 경쟁’에서 클린턴이 당선된다 한들 해소될 일이 아닌 듯싶다. ‘2020년 제2의 트럼프’ ‘2024년 제3의 트럼프’는 기정사실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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