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정치 상황은 2015∼2016년의 미국을 연상케 한다. 미국이 2016년 11월 대선을 치르기까지 나타났던 현상들인데 나름 한국과 유사점이 있다. 먼저 야당의 강성화다. 최근 자유한국당에서 꽤나 거친 발언들이 계속 나오는데 집권세력을 향한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막말은 개인 차원에서 등장하지만 막말이 반복되는 배경엔 야권 지형에서 협력적 보수보다는 투쟁 보수, 강성 보수가 더 힘을 얻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2016년 미국에선 야당인 공화당에서 여러 후보가 나섰는데 결과적으로 온건 성향 후보들은 밀려나고 제도권 내 강성 보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워싱턴 정치 바깥의 반이민 보수 도널드 트럼프가 경합하다 결국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다. 당초엔 부시 집안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가장 주목받았지만 이민규제 강화 반대 등 온건 성향의 그는 트럼프에 밀렸다.
둘째는 현직 대통령을 둘러싼 지지층과 반대층의 대치다. 문재인 대통령을 놓고 누군가가 “빨갱이”라고 비난했다는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무슬림 루머’로 시달렸다. 당연히 대한민국이 빨갱이 대통령을 뽑았을 리 없고, 오바마는 무슬림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미국에선 야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루머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2015년 9월 CNN 여론조사 때 민주당 성향 응답자의 54%는 ‘오바마는 기독교인’이라고 답한 반면 공화당 성향 응답자의 44%는 무슬림으로 답했다. 물론 오바마에 대한 지지층의 존경과 믿음은 강력했다. 문 대통령이 지지층으로부터 변함없는 지지를 받는 것처럼 말이다. 오바마 지지는 임기 말에 더 상승했다. 오바마는 59%라는 높은 국정수행 지지율(2017년 1월 16∼19일, 갤럽)을 마지막으로 백악관을 떠났다.
셋째는 경제다. 미국 대선 기간 내내 이슈가 됐던 게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의 표심이었다. 이른바 퇴락한 제조업 지대(러스트 벨트)를 상징하는 이들은 트럼프의 반이민·반세계화 구호에 전기 자극을 받은 것처럼 반응했고,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 만들기의 공신이 됐다. 그런데 원래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는 민주당이 텃밭으로 삼을 이들이었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도시 근로자와 노조, 동부와 서부의 리버럴 고학력·고소득층, 소수인종 등인 반면 공화당은 광활한 농장이 상징하는 중부,남부와 내륙 지역 주민들, 보수 기독교계가 강고한 지지층이었다.
현 정부 들어서 실시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심각한 역효과도 가져왔는데 그중 하나가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고통이다. 그간 여당의 일관된 구호는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인데 정책 성과로 본다면 당이 지향하는 지지층 살리기와 역행한 대목이 있는 건 분명하다.
마지막 넷째는 현실과 다른 여론조사인데 한국에서도 이럴지는 내년 4월 총선 때까지 가봐야 안다. 미국에선 2016년 11월 대선 직전까지 대부분의 주류 언론과 주요 여론조사기관들은 트럼프 승리를 예측하지 못했다. 대선 한 달 전인 2016년 10월 워싱턴포스트는 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할 가능성은 0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했다. 현재 한국의 각종 여론조사에선 집권 여당이 넉넉히 앞서는 결과가 많다.
내년 4월까지 이런 여론조사 결과가 유지된다 해도 정부 여당은 안심해선 곤란하다. 야당이 합리성을 잃고 강성으로 치달아도, 대통령에 대한 지지층의 사랑이 굳건해도, 여론조사는 그다지 나쁘지 않게 나온다 해도, 먹고 사는 게 힘들다는 사람들이 늘면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게 2016년 미국 대선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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