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a New President Comes a New Cold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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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1946년 3월5일 미국 남부 미주리주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냉전의 도래를 예견하는 매우 흥미로운 연설을 했다. ‘철의 장막’이라는 독특한 표현으로 역사에 기록된 연설에서 처칠은 소련이 “발트해의 슈체친에서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까지 철의 장막을 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자국민 2천만명의 목숨을 쓸어 넣은 처절한 전쟁이 끝난 뒤 소련은 자신의 안보 불안을 이유로 삼아 동유럽인들의 자유의사를 무시하고 자신에 우호적인 공산정권을 강요했고, 미국은 이에 맞서 대대적인 봉쇄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향후 40여년 동안 이어지게 될 기나긴 냉전의 시작이었다.

지난 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국정연설을 듣고 자연스레 처칠을 떠올린 것은, 이 연설 역시 훗날 신냉전의 도래를 선언한 ‘역사적 연설’로 기억될 수 있겠다는 직감이 들어서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유는 언제나 폭정을 이길 것이다. 5일 전(지난달 24일) 블라디미르 푸틴이 그의 위협적 방식에 고개를 숙일 것이라 기대하면서 자유세계의 기초를 흔들려고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크게 오판했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인류가 현재 “민주주의와 독재 간의 싸움이라는 변곡점 위에 있다”고 말해왔는데, 푸틴이 저지른 ‘비열한 폭거’로 그 예언이 적중한 꼴이 됐다. 옛냉전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경제 시스템을 둘러싼 대립이었다면, 신냉전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혹은 독재)라는 정치체제 간의 갈등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믿는 기본적 가치들인 △민주주의 △법의 지배 △국제 규범의 준수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의 원칙을 무시하고 폭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는 이들이 있다면, 전세계가 일치단결해 처절히 맞서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냉전 시기 봉쇄정책처럼 현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러시아를 몰아내는 어마어마한 조처를 매일같이 쏟아내고 있는데, 이 흐름은 앞으로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된 신냉전은 중국이라는 또 하나의 권위주의 대국과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동아시아에도 적잖은 변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중국은 푸틴을 비난하지도, 제재에 동참하지도 않는다). 동아시아의 두 화약고는 다름 아닌 ‘한반도’와 ‘대만해협’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압박이 날로 노골화되면서, 지역 전체의 긴장감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 일본은 “대만의 위기는 곧 일본의 위기”라는 인식 아래, 만에 하나 끔찍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미-일 동맹을 한층 더 강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견줘 한국은 대만 사태를 어느 정도 ‘강 건너 불’로 보고 있으며, 갈등이 발생할 경우 이에 말려들어가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는 중이다.

현대 한국인에겐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지만, 냉전적 틀로 세계를 바라볼 때, 한반도~일본~대만의 안보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불가분의 관계라 할 수 있다. 냉전 시기를 살았던 이승만·박정희와 대만의 장제스는 양국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오키나와 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거대한 미군기지가 있는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되려 하자, 이 문제는 “극동의 안보상 관계되는 자유국가 전체의 안전에 직결된다”며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키나와의 가데나는 한국전쟁 때 북한을 타격한 폭격기가 출격한 배후기지였고, 대만 사태가 발생할 경우 제1선에서 이에 개입하게 되는 미군의 전진기지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69년 11월 공개된 닉슨-사토 공동성명에 “한국의 안전은 일본 자신의 안전에 있어 긴요하다” “대만 지역의 평화와 안전의 유지도 일본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구절을 넣었다.

신냉전의 여파가 동아시아에도 미치게 되면서, 한·미·일과 대만·오스트레일리아를 포괄하는 군사협력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점 고개를 들 게 될 것이다. 이 반갑지 않은 ‘낯선 과거’의 도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새 대통령이 5년 동안 감당해야 할 가장 큰 외교·안보상의 과제가 있다면, 바로 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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