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밋했던 미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전이 예상하지 못했던 흑인후보 허먼 케인의 선전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케인은 불과 몇주전만 하더라도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군소후보였지만 이젠 일요일 오전 시사 TV 토론에 출연하고 주류 언론이 살아온 인생과 공약을 검증하는 주요 후보로 떠올랐다.
케인의 인기는 공화당원뿐 아니라 미 국민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을 검색하는 웹 서치에서 그는 53%로 차지했다. 6주전 같은 조사에서는 2%에 그쳤다. 그는 이미 티파티의 선두주자인 세라 페일린과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를 따돌렸다.
백인 정당인 공화당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 케인은 또 하나의 아메리칸 드림이다. 그는 인종차별이 극심한 지난 1950~60년대 남부 조지아에서 성장했다. 버스 뒷자리에 앉아야 하는 차별 속에서도 더 열심히 해 성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대학원을 졸업 후 해군에서 근무한 뒤 그의 아버지가 운전기사로 일했던 코카콜라에 임원으로 들어갔고 이후 버거킹을 거쳐, 파산지경에 내몰렸던 피자체인 갓 파터의 최고경영자(CEO)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전미요식업협회라는 단체를 이끌며 로비스트로도 활동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그가 이때 식당 내 금연규정 철폐와 혈중 알코올 농도 기준치 인하 반대 등을 위해 일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결정암 선고를 받기도 했지만 그는 결국 이겨냈다.
소탈한 성격과 탁월한 유머감각, 뛰어난 친화력도 그의 인기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지난 91년 그가 유명 팝 가수 존 레넌의 명곡 ‘이매진(imagine)’을 차용해 ‘피자가 없다면(imagine there is no pizza)’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또 뛰어난 유머감각이 오히려 진지한 후보의 이미지 형성에 방해가 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다.
개인적인 요소와 더불어 그의 인기 이면에는 미 국민들의 현실에 대한 좌절과 분노가 내재돼 있다. 케인을 대표하는 공약 ‘9-9-9 플랜’은 개인소득세, 법인 소득세, 판매세를 9% 단일 세율로 통일해 재정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나라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주 정부의 예산이 모자라면서 형기를 채우지 않은 죄수들을 석방해야 하고, 누더기 도로를 보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케인의 공약이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시원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케인의 인기는 ‘우리는 99%’를 외치며 경제적 불평등과 답답한 현실에 저항하는 월가 시위와 일맥상통한다. 기존의 정치구도에서 케인이 공화당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의 인기는 일순간 시들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쇠락하는 현실에 대한 미 국민들의 변화 욕구는 갈수록 커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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